캐나다 “쇠고기 시장 개방하라” WTO에 한국 제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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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가 쇠고기 문제로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과 똑같은 광우병 위험 통제국인데도 캐나다만 차별해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캐나다 정부는 9일(현지시간) 한국의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가 차별을 막은 WTO 협정에 어긋난다며 제소했다. 게리 리츠 캐나다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캐나다 정부는 항상 캐나다 쇠고기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광우병으로 인한 쇠고기 수입 문제로 WTO에 소송이 걸린 것은 전 세계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캐나다는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호주·뉴질랜드에 이어 넷째로 많이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했다. 그러나 2003년 5월 광우병 소가 발견돼 한국이 미국 쇠고기와 함께 수입을 금지했다. 4년 뒤인 2007년 5월 캐나다는 미국과 함께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광우병 위험 통제국가로 인정받았고, 다음 달 한국 정부에 수입 재개 신청을 했다. 이후 몇 차례 협의와 캐나다 현지 위생 조사가 진행됐다. 그 와중에 캐나다에서 광우병 소가 5차례 더 발견됐다. 하지만 캐나다는 광우병 소가 발견됐으나 광우병 쇠고기가 유통될 염려는 없다며 협상을 재촉했다.

한국 정부는 국민이 불안해하는 점을 들어 수입을 재개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협상이 시간을 끌자 캐나다 측이 WTO에 제소한 것이다. 리츠 장관은 지난달 20일 방한해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WTO에 제소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과 캐나다는 WTO가 정한 절차에 따라 앞으로 두 달간 쇠고기 수입 조건 등에 대해 협의를 하게 된다. 여기서 합의안을 내지 못하면 WTO가 분쟁조정단을 구성해 사안을 조사하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조정단이 최종 결론을 내릴 때까지는 통상 2년 정도 걸린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의 광우병 방역 시스템이 미국과 차이가 난다는 점을 증명해야 이길 텐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우병준 박사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미국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때 OIE의 기준에 따랐다”며 “그런 만큼 OIE가 똑같이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인정한 캐나다와 미국을 우리가 다르다고 주장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장태평 장관은 10일 기자회견을 하고 “(캐나다와 협상을 할 때) 우리 입장은 국민 정서와 소비자의 민감도를 고려해 신중히 하자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WTO 소송에서는 과학적·합리적인 측면만 보기 때문에 소비자나 국민 정서는 감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승소하기 어렵다는 점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장 장관은 “(소송 전 60일간의) 양자 협상 과정에서 타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인하대 정인교(경제학) 교수는 “한국이 수입 재개를 앞당기도록 압박하려고 캐나다가 제소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여러 건 추진하고, 무역 의존도도 높은 우리나라가 WTO 소송에서 지는 것은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리한 소송에 이르기 전 쇠고기 수입을 결정할 것이라는 게 캐나다의 계산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홍콩·대만은 캐나다와 미국 쇠고기를 똑같은 조건으로 수입한다. 일본은 20개월 미만, 홍콩과 대만은 30개월 미만을 들여온다. 캐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캐나다는 모두 55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고 있다.

권혁주·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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