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급전 꿔오기 무릎꿇은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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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일은 미셸 캉드쉬 IMF총재의 한마디에 정치권이 무릎을 꿇은 하루였다.

청와대는 협상 서명식이 끝난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캉드쉬 총재를 접견하는 일정을 짰으나 캉드쉬가 합의문 일부에 이의를 제기해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와 가지려했던 합의문 서명식은 미뤄졌다.

金대통령은 이날 오전 미합의 상태에서 캉드쉬를 접견했다.

林부총리.이경식 (李經植) 한은총재.휴버트 나이스 IMF실무협의단장등이 배석했다.

그런 만큼 金대통령의 얘기는 더욱 부탁조일 수밖에 없었다.

金대통령은 "금융위기가 심각하다.

대통령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할테니 빨리 협상만 마무리해 달라" 고 말했다.

캉드쉬는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참고 잘해 나가면 몇년후에 한국 경제는 튼튼한 모습으로 바뀔것" 이라고 말했다.

돈을 꿔주는 사람한테서 풍기는 '느긋함' 에 한 참석자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탔다" 고 고백했다.

그렇다고 金대통령 앞에서 요구조건을 꺼내놓고 협상을 벌일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참석자는 "아무리 급전 (急錢) 을 얻는 처지지만 대통령 체통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 답답해 했다.

대신 林부총리가 대강의 협상과정을 설명했다.

그중에는 IMF가 대선 후보들에게 보증각서를 받는 내용도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청와대는 "정부 모독이다.

소련이 공산주의 몰락으로 러시아로 바뀌었어도 대외부채.협정의 모든 것이 승계됐다" 고 지적해왔다.

그런데 꼼짝없이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3당 후보들도 이날 이행보장각서에 대한 IMF의 실질적인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3당은 2일엔 대변인선에서, 3일 오전엔 정책위의장선에서 준수의사를 천명하는 것으로 비켜가려 했다.

하지만 3일 오후 캉드쉬 총재가 조인식을 미루면서 버티자 후보들은 결국 金대통령에게 이행을 약속하는 각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하지만 형식에서는 다소나마 나라의 체면을 지켰다.

정부는 IMF총재에게 각서를 줄 수 없으며 대신 후보들이 金대통령에게 서약하는 형식을 고집했다.

김대중 (金大中) 후보는 金대통령에게 약속하는 서한형식을 택했다.

박보균·김진·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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