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이르면 내주 소환될 수도 … 검찰, 사법처리 수순 밟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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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대검찰청 기자실. 브리핑 도중 질문을 받은 홍만표 수사기획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직 대통령이 관련된 거라…”면서 머뭇거렸다. 그를 보던 기자들의 눈이 커졌다. 그는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다”며 입을 다물었다. 평소의 답변 스타일로 미뤄볼 때 질문이 맞다는 모양새였다.

문제의 질문은 “노무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에게 돈을 먼저 요구했느냐”는 것이었다. 문답을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 측이 박 회장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사 단서가 있다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을 검찰이 처음으로 확인해준 순간이었다.

◆정상문 영장이 징검다리=홍 기획관은 “오늘 구속영장에 의미있는 게 많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영장이 청구된 대상자는 노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렸던 정상문(63)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었다. 홍 기획관은 이 영장 때문에 대검에서 밤을 새웠다고 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9일 새벽 3시 퇴근했다. 이번 수사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의 혐의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3억원의 현금과 1억원어치 상품권을 받았다는 것이다. 영장에는 그가 100만 달러를 받아 누군가에게 건넸다는 부분이 있다. 그 누군가는 노 전 대통령 부부 중 한 사람이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에 100만 달러 전달 부분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구속이 목적이었다면 그 부분은 감춰두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사팀은 다른 선택을 했고, 브리핑에서 그 부분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7일 정 전 비서관이 체포되자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홍 기획관은 그러나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이 검찰의 판단과는 다르다는 취지의 말을 이어가며 그 해명을 무색하게 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전달했다는 100만 달러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측 요청으로 돈을 줬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받아 놓은 상태다.

◆‘D데이’ 앞당겨질 듯=중수부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하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수사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다양한 의혹의 종착지인 노 전 대통령을 조사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돈의 수수에 노 전 대통령이 개입했는지 확인하는 게 관건이다. 검찰은 이미 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만간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할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 주가 될 수도 있다.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송금받은 500만 달러와 관련해서도 노 전 대통령은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이 돈의 수혜자를 노건호씨로 판단하고 있다. 아들에게 전해진 돈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혐의 내용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인 아버지를 보고서 준 돈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에 맞기 때문이다. 500만 달러 수수에 개입된 대통령의 아들과 조카사위도 조사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물 유출 사건과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유족이 낸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해서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 대검 중수부의 ‘D데이’는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진 상황이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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