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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독자적 미덕 인정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무성영화시대의 스타 찰리 채플린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못들어봐도 내 이름은 들어본 사람들이 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가 나온 초창기에도 이러했으니 영화의 힘 혹은 영향력이 오늘날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 최초로 백만명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영화 '서편제' 에 대해 생각해보자. 영화에 출연하지 전까지는 전혀 알려진 바 없었던 오정해라는 인물을 이 영화는 간단히 전국민이 다 아는 스타로 만들어 버렸다.

임권택을 이 나라 최고의 감독으로 확인하게 만들었으며, 그동안 무관심 속에 잊혀져왔던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뜨겁게 불러 일으켰다.

소수의 고급독자들에게만 그 이름이 알려진 정도인 소설가 이청준도 이 영화의 성공 이후엔 꽤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음악이나 문학이 '팔려나가는' 데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영상예술이다.

영화의 성공은 곧 그 영화의 주제곡을 인기곡으로 만들어 버린다.

문학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소설은 영화와 관계없이도 잘 팔리지만, 영화로 잘 만들어지는 경우, 이 소설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린다.

'유리' 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그 원작인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도 좀 팔리게 되었을 지 모른다.

영화로 인해 친숙해진 탓이 아니라면 평범한 독자 중 누가 '전망 좋은 방' 을 읽겠는가.

문학작품을 감동적으로 읽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다시 영화로 보고싶어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다시보기' 의 관객이 된 사람들은 대개 실망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실망감만을 안고 극장을 빠져나오는 이들 고급독자들은, 문학의 품격을 영화는 결코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한국 영화는 원작의 감동을 고스란히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도 할 것이다.

이러한 반응이 '태백산맥' '토지' '젊은 날의 초상' 등과 같은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느낌이라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왜 이러한 미진함이 잘 만들어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사람의 아들' '만다라' 같은 영화에서도 느껴지는가?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는 경우보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경우가 훨씬 실망스럽다 해서 영화 혹은 영화감독을 폄하해선 안된다.

실망은 장르가 변경되는 순간에 발생하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문학작품을 통해 경험했던 그 감동을 영화를 통해서도 똑같이 얻으려는 기대 자체가 오히려 부당한 것이다.

영화와 문학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차이가 있으며 서로 다른 두 예술가의 재능과 취향 또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작에 의거하여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은 원작에 되도록 충실하기를 택하거나, 원작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택할 수 있다.

충실하려면 철저히 따르는 것이 좋고, 자유로우려면 아예 원작을 잊을 정도인 것이 좋다.

원작의 명성이 압도적인 경우라면 영화는 원작에 충실한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을 읽은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면 원작에 구애받지않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문학이 결코 획득할 수 없는 독자적인 미덕을 충분히 갖고 있는 것이다.

채영식<문학·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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