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대중속으로 파고든다…눈길 붙잡는 '몸짓 즉흥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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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주춤했던 퍼포먼스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70.80년대 미술인들 사이에서 기존 미술형식에 대한 저항으로 유행처럼 번지다 수그러들었던 퍼포먼스 (행위예술)가 미술의 영역을 넘어 문학과 무용.패션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작게는 어떤 행사의 개막을 알리는 1회의 이벤트성 퍼포먼스에서부터, 즉흥성에 기초를 둔다는 퍼포먼스의 원래 속성은 접어두고 사전 대본과 연출력을 강조한 신개념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퍼포먼스가 진행중이다.

이처럼 퍼포먼스가 장르에 상관없이 다각도로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는 순수예술 분야의 대중화 바람을 꼽을 수 있다.

퍼포먼스는 예술과 일상 생활과의 경계를 없애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순수예술 쪽에서 일반대중들을 예술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퍼포먼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관객 50여명이 모인 대학로의 한 소극장. 한 사람이 서류가방을 들고 서서히 걸어나온다.

가방에서 자작 시집 하나를 꺼내들고는 감정에 북받친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읊조리기 시작한다.

시낭송이라기보다 마치 연극 대사를 풀어나가는 듯한 극적인 목소리. 이렇게 몰입하며 시를 외우다가 막히면 객석의 관객들이 시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시를 멈추고는 직접 기타를 치기도 하고, 또 북소리에 맞춰 흥을 돋우기도 한다.

시와 음악, 그리고 관객까지 한데 어우러진 이 무대는 지난 24일 열린 시인 성찬경씨의 '말예술' 한마당. 성씨 본인은 '말의 총체적인 예술화' 를 뜻한다고해서 '말예술' 이라고 이름붙였지만 결국 다양한 장르가 하나로 모아지는 퍼포먼스로 볼 수 있다.

"이게 무슨 퍼포먼스야?" 라면서 의아해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다.

퍼포먼스라고 하면 '미술가들의 미친 짓'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용히 서서 시나 외는 것을 퍼포먼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기존 미술형식에 반기를 드는 실험적인 수단으로 시작된 퍼포먼스는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자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나체 (裸體) 로 몸부림을 치거나 피아노를 깨부수는등 지나치게 과격한 형태를 띠어 오히려 대중과 유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의 퍼포먼스는 이 단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좀더 다양화하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퍼포먼스는 전시회와 출판기념회등 어떤 행사를 시작하면서 이를 알리는 수단으로 벌이는 일종의 이벤트이다.

플러스 갤러리에서 12월 4일부터 98년 1월 15일까지 '시 (始) - 비롯함에 관한 명상' 이라는 설치전을 갖는 윤효준씨가 개막일인 4일 무용가와 시인.의복 연구가와 함께 벌이는 퍼포먼스나, 한국누드모델협회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누드모델 하영은 회장이 누드집 출간을 기념해 다른 누드모델 30여명과 함께 29일 오후 4시 서울 청담동 스페이스 샘터에서 펼치는 누드 퍼포먼스가 이런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지난 19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벌어진 젊은 예술가들의 해외 문화체험 출정식 모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모임은 패션그룹 레더데코의 후원으로 화가와 영상작가, 무용가등 각 분야의 예술인 10명이 12월 문화체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서로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튀는 젊은 예술가답게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펼쳐보이는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됐다.

퍼포먼스는 모두 특정 주제나 각본은 있지만 스토리가 없는 즉흥성에 기초를 둔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즉흥적이다보니 행위 자체가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을 읽어내고 지난 10월 퍼포먼스 비디오 '하이웨이' 를 선보인 이윰씨는 좀더 치밀한 새로운 개념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하고 있다.

이윰씨는 "지금까지의 퍼포먼스는 높아진 대중들의 예술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을만큼 완성도를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이라면서 "시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도 연출력이 돋보이는 극 형식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겠다" 고 말했다.

이씨는 무용가 김효진씨와 함께 이미지 시어터라는 단체를 만들어 98년 1월 15일과 16일 이틀동안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버라이어티 쇼' 를 펼친다.

너무 순수미술쪽에 치우치거나, 혹은 너무 이벤트화된 기존 퍼포먼스와는 달리 행위에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신개념 퍼포먼스를 심겠다는 것이다.

또 이를 영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일회성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시킨다고 한다.

퍼포먼스 장면을 감각적으로 영상에 담아 뮤직비디오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 29일과 30일 여의도 한강고수부지 야외무대에서 벌어질 행위미술가 심철종의 '자동차씨 모의재판' 은 캠페인 퍼포먼스를 표방하고 있다.

점차 심각해지는 자동차문화를 비판적으로 돌아본다고 한다.

다양한 퍼포먼스. 이제는 바라만 보지말고 함께 즐기자.

안혜리·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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