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투쟁 민주노총 무너져 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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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민주노총에 등을 돌리는 산하 조직이 줄을 잇고 있다. 올 들어 NCC·영진약품·승일실업·진해택시·그랜드힐튼호텔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서울도시철도·인천국제공항·인천지하철공사 노조는 탈퇴를 위한 조합원 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들 3개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조직 중에서도 극렬 투쟁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노동계의 새판 짜기가 시작된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한국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꿀 계획이다. 서울도시철도와 인천지하철 노조는 아예 새로운 노총을 만들기로 했다.

노동계에서 민주노총의 와해는 이미 예상됐다. 현실을 외면한 끝 모를 정치투쟁에 산하 조직의 불만이 오래전부터 쌓여 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성폭력, 사기 도박, 횡령 등 복마전을 연상케 하는 집행부의 도덕적 타락이 겹치면서 잠복해 있던 불만이 수면 위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대표마저 “약자를 외면하는 노동운동은 시효가 끝났다”고 질타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노총의 대응은 역주행이다. 지난 1일 신임 위원장이 ‘정권 타도를 위한 끝장 투쟁’을 외치더니, 엊그제는 산하 금속노조 집행부가 국제 모터쇼에서 선지를 뿌리며 경찰을 폭행했다. “한국 자동차가 비정규직의 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 것”이란 게 그들의 변이었다. 참석한 외국 손님들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위기 극복에 동참하지는 못할망정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해대는 이들의 행보엔 이제 브레이크가 없어 보인다. 국민과 여론의 수없는 질타와 촉구에도 변하지 않는 조직이라면 갈 길은 파국뿐이다.

이제 산하 단체들은 공도동망(共倒同亡)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앞날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실익을 좇아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도 이들을 돕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얼마 전 인천지하철공사는 참석 조합원 63%의 찬성을 얻고도 민주노총 탈퇴가 좌절됐다. 참석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을 요하는 노조 규약 개정 규정 때문이었다.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민주사회의 통상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넘어서는 이런 과도한 노동법 적용을 완화해 일선 노조들의 활로를 뚫어주어야 한다. 법보다 단체협약을 중시하는 관행도 이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단협을 빌미로 산하 조직을 정치투쟁에 내모는 상급단체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