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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물류전문가] 그대 있음에…에이서는 9000만 달러 절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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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전자업체 에이서의 예를 보면 물류가 기업 경영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에이서는 2000년 초 어렵게 진출한 유럽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물건을 팔아 남는 돈이 1억 달러 남짓인 상황에서 물류 비용만 1억 달러 이상 들었다. 당시 에이서는 중국 공장에서 반제품을 생산, 유럽으로 가져와 조립한 뒤 커다란 물류창고에 보관하다 현지 고객에게 배달하는 물류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유럽 내 각 거점 공항을 통해 배송한 뒤 고객에게 직접 제품을 배달하는 식으로 이를 전면 개편하자 물류 비용을 수백만 달러 대로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에이서의 변신 뒤에는 생산 공장뿐 아니라 물류 창고, 판매망까지 손질한 물류전문가의 역할이 컸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물류전문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제품의 품질 차이가 크지 않고 소비자의 트렌드는 빨리 변화한다. 물류를 통한 이송 시간 단축과 비용절감이 기업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꼽힌다. 물류전문가의 역할도 크게 확장되고 있다.

기존에 물류전문가는 주로 고객의 의뢰를 받은 물건을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배달하는 것이 주 업무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엔 고객사의 상품과 시장 특성을 파악해 물류창고 위치, 수송 수단, 세관 통관, 배송 등 최적화된 물류 시스템을 개발해 주는 컨설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 기업의 물류 시스템을 떠맡으려면 원자재의 조달, 조달된 원자재를 이용한 생산, 생산된 완제품의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꿰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유 차장은 “물품의 생산, 운송, 보관, 재고 관리 등의 모든 과정을 물류전문가의 머리에 의존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물류전문가들은 원자재 조달 방법, 생산 공장 위치 선정, 상품 판매망 구축 등에도 깊숙이 개입해야 할 때가 많다는 것. 그는 “국내서 생산한 휴대전화를 유럽에 수출할 경우 물류창고 위치를 머릿속에서 수백 번씩 그려보곤 한다”고 말했다. 또 물건의 판매가격과 시점 등을 고려해 시장별로 항공기를 이용할지 선박을 사용할 지 등을 결정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때로는 기업 요구에 맞춰 각국 세관의 통관 시스템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한다.

그는 “물류전문가에게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며 “창고 위치, 수송 수단, 세관 통관 등 여러 가지 변수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창의성이 많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엔 컴퓨터나 반도체, 통신장비, 의료기기, 의류 같은 유행이 자주 바뀌는 제품들의 물류 관리 수요가 늘었다. 그러다 보니 물류 시스템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의 특성과 소비자 트렌드를 읽는 것도 물류전문가가 갖춰야 할 소양이 됐다.

20여 년의 물류업계 경력을 보유한 ㈜한진의 신환산 상무는 “물류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재무, 회계, 데이터 분석 등 관련 분야의 학습이 필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류의 전반적인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총체적인 물류를 관리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류전문가가 활동할 수 있는 업체는 TNT 나 페덱스 같은 국제 특송 기업과 최근 국제 시장으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국내 택배업체, 자사의 물류 관리가 필수적인 제조나 유통 기업 등이 있다. 특히 기업 환경이 세계화하면서 기업에서 국제 물류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신환산 상무는 “산업계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물류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며 “보수도 높고 근무조건도 좋은 데다 최근엔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글로벌 무대에서 뛰겠다는 꿈을 가진 젊은이라면 물류전문가에 도전하라고 적극 추천하고 싶다”며 “세계 각국이 활동 무대인 만큼 영어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글=장정훈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물류전문가 되려면

통계분석 잘하면 유리
국토부서 자격증 관리

대학에서 산업공학과나 무역학과 같은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한 만큼 회계나 재무, 경영학, 정보통신(IT) 등을 전공한 사람도 가능하다. 또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야 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프로그램이나 통계분석시스템(SAS) 등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면 유리하다.

유영준 차장은 “물류전문가를 꿈꾼다면 모든 상황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기업의 요구가 모두 달라 그 요구에 맞춘 물류 서비스를 개발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각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필수다. 한진의 신환산 상무는 “수많은 데이터에 매몰되지 않고 데이터 위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생산하려면 논리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물류업계에 진출하려면 국내서 실시되는 물류관리사나 미국이 주관하는 생산재고관리사(CPIM) 자격증을 취득해 두면 좋다. 국토해양부가 관리하는 물류관리사 자격증 시험은 매년 한 번 개최된다. 물류관리론·화물운송론·보관하역론 등의 과목을 시험보는데 전 과목 100점 만점에 과목별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이어야 합격한다.

미국이 주관하는 CPIM 자격증 시험은 40여 개 국가에서 실시돼 현재 5만7000여 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CPIM은 생산재고관리 분야의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물류분야의 국제 자격증으로 불리는 물류자격증(CPL)은 물류 쪽에서 5년 이상 종사한 사람만 응시할 수 있다. CPL은 공급망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가 기업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으면서 물류업계에서 최고의 자격증으로 인정받고 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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