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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서초등학교 '교내 우체통' 인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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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혜진이에게, 요전에 화낸 일 사과할게. 네가 다른 애들하고만 친하게 지내길래 화가 났던거야. " "혜영이에게,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데. 네 편질 받고 오히려 미안했어. " 서울구로구구로3동 영서초등학교 (교장 朴瓊子.61) 학생들에게는 바쁜 세상 속에서 천덕꾸러기처럼 돼버렸던 편지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는 이 학교의 자랑스런 명물로 자리잡은 '사랑의 편지' 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봄.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우체국을 조직하고 각 반에 '학년+0+반' 식으로 우편번호를 지정했다.

예컨대 3학년3반은 우편번호가 303이 된다.

교내 곳곳에 설치된 우체통에 쌓이는 편지는 평소 한달에 3백~4백통 정도지만 가을철에 접어든 이후에는 6백여통에 이르고 있다.

전교생이 8백30여명이므로 어린이 한명이 적어도 두달에 한번꼴로 편지를 쓰는 셈이다.

편지는 1주일에 두번씩 모아 다음날 각 반으로 배달된다.

'사랑의 편지' 는 사제 (師弟) 간의 벽을 허무는데도 특효약이 되고 있다.

"교장할머니, 교실TV가 고장났는데 고쳐주세요" "선생님, 아무데나 휴지를 버려 죄송해요. 앞으로는 안그럴게요" 등의 내용이 적힌 학생들의 편지를 받은 朴교장과 교사들은 "TV는 빨리 고쳐줄게. 너희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애들이다.

사랑한다" 고 일일이 답장해 주고있다.

이 학교 어린이들은 부모들과도 '사랑의 편지' 를 주고받는다.

부모들이 대부분 공단근로자여서 늦게 귀가할 때가 잦아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지만 가슴 뭉클한 사연을 교환하면서부터는 마음의 거리가 한결 좁혀졌다.

"아빠, 좀 일찍 들어오세요. 저는 일하다 다치신 아빠의 손만 보면 가슴이 아파요. " "사랑하는 이슬이에게, 이제는 일찍 들어올게.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 우체국장인 6학년 李나래 (12) 양은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재미있다며 열심이에요. '사랑의 편지' 를 전하는 일도 보람있고요" 라고 말했다.

지도를 맡고 있는 김주성 (金周成.40) 교사는 "편지로 속얘기를 나누다 보니 학생들간 다툼이 줄고 학교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다.

게다가 인격형성은 물론 작문연습도 돼 일석이조 (一石二鳥) 의 교육효과를 거두고 있다" 고 대견해 했다.

장혜수.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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