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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6세 여아 일인당 12개씩 가지고 있는 이것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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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첫돌, 첫 등교일, 첫 직장 … 전세계의 여자 어린이 중 다수가 여기에 하나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바비 인형이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은지(11초등 3학년)양은 첫 바비인형과의 만남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첫 바비인형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는 아기를 위한 물품들을 몇 가지 샀어요. 바비 인형도 포함됐었죠." 엄마 김신정씨(43)의 말이다. 은지는 그 인형을 포함해 바비 인형을 현재 8개 갖고 있다. 나머지 7개는 물론 스스로 고른 것이다. 하지만 은지는 이전처럼 자주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지는 않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공부 시간이 많아졌고, 닌텐도 같은 전자게임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다. 대신에 은지는 이제 바비 아동복을 입는다. 바비 아동복은 전국의 백화점 23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올해는 바비가 태어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1959년 미국의 마텔사가 출시한, 길이 30㎝의 이 인형은 세계 패션 인형 시장을 바꾸어 놓았다. 은지의 이야기는 바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 탄생 50주년, 바비의 명암 바비는 전대미문의 인형이다. 마텔에 따르면 미국의 3-6세 여아 일인당 바비 인형을 12개 갖고 있다. 이윤지 마텔코리아 사장은 "바비는 패션 라이프스타일뿐 아니라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고 자랑한다. 세계적으로 지난 50년간 10억 개의 바비 인형이 팔렸다고 한다. 한 줄로 늘어 놓으면 지구를 4 바퀴나 돌 수 있는 숫자다. 바비에는 그 명성에 못지 않게 이런저런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비판론자들은 '바비가, 어린 여아들에게 적합한 장난감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바비의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 그리고 옷장에 가득 찬 것으로 비취지는 드레스 신발 장신구 등의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불건전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받으면서 바비는 변화했고, 평론가들의 관점도 달라졌다.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바비의 직업에 대통령 우주비행사 의사 등이 포함된 것을 보면 마텔사가 비판론자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는 반영한 것 같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이 위원장은 "바비가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서, 영화 슈렉의 피오나 공주 같은, 대중문화의 혁명적 캐릭터 역할을 시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전자게임기 VS 바비? 이마트의 올 1분기 전체 장난감 매출액 중 바비를 포함한 인형의 비율은 10% 정도에 그쳤다. 반면 전자게임기의 비율은 47%를 차지했다. 3년 전에는 인형의 매출 점유율이 15%, 그리고 전자게임기가 27%였다. 롯데마트의 한 관계자도 "전자게임기의 인기가 매년 높아지면서 인형 판매가 부진하다"고 분석했다. 바비를 비롯한 이른바 '패션인형'들은 이제 어린이들의 방과후 활동에서 점차 '소외'되고 있다. 통계청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3명 중 2명이 방과후에 TV 또는 DVD를 시청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마텔도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마텔코리아 이윤지 사장은 "아이들의 생활이 바뀌면, 바비 또한 변화한다"며 "요즘 어린이들의 24시간을 분석해 이들의 생활 속에서 바비가 사라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라이센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텔의 전략은 DVD나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바비 홈페이지(Barbie.com)에 접속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 홈페이지에서는 바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와 게임이 제공된다. 바비가 출연한 영화는 현재 14편이나 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바비 동영상이 1000개에 이른다. 바비 상품은 온라인을 넘어서 학용품 책가방 아동복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 바비 VS 미미 이 지사장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바비는 주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 중점을 둬왔다. 이렇다보니 지난해 마텔 전체 매출액(59억달러) 중 51%가 미국, 26%가 유럽에서 벌어들인 것이었다. 전체 매출 중 아시아 비율은 4%에 그쳤다. 마텔은 3월에 중국 상하이에 6층짜리 대형 매장을 열었는데, 마텔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체인점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장소가 파리나 런던이 아닌 상하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2002년에 한국 지사를 연 마텔은 한국 시장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고 못하고 있다. 롯데마트가 2007년 12월에 개장한 '토이저러스'의 패션인형 전체 매출 중 바비는 27%를 점유할 뿐이다. 나머지 73%는 국내 패션 인형들이 차지하고 있다. 국내 브랜드인 '미미' 가 점유율 38%로 선두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바비가 한국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을까. 올해들어 한국에서 마텔의 라이센스 사업은 아이들을 넘어서 어른들까지도 고객으로 아우르기 시작했다. 마텔코리아는 2월에 국내 브랜드 '숲'(Soup)와 함께, 바비 여성복을 출시했다. 또 악세서리 브랜드 '모자이크'(Mosaic)와 공동으로 주얼리를, 구두 브랜드 '새라'(Saera)와 함께 여성 구두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 지사장은 "바비가 한국 패션인형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바비에게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김형은 기자 hkim@joongang.co.kr 이 기사는 영문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영문 기사 바로 가기
[A perfect doll or an unhealthy toy, Barbie looks to th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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