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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높이 날다’ 환율 엔진 달고 새 먹거리 찾은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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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병 주고, 약 줬다. 5일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가 집계한 1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영업실적에 나타난 환율의 영향을 말한다. 원화 약세는 주가 하락과 환차손, 그리고 키코(KIKO)와 같은 파생상품의 손실을 초래했지만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려 기업들의 실적 악화를 상당 폭 막아줬다.

환율 효과는 현대자동차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도요타는 2008 회계연도에 창립 70년 만에 처음 4500억 엔의 영업적자를 냈고, 일본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도 영업이익이 3.5% 줄었지만 1조877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도요타가 이렇게 된 데는 엔고 탓이 크다. 2007년에 비해 지난해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평균 18.7% 떨어지는 동안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였다.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도 급등했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현대차가 공격적으로 영업하는 동안 도요타는 속을 끓였다. 지난해 현대차가 세계시장 판매량을 7% 늘린 반면 도요타의 판매량은 거꾸로 7.5% 줄었다. 기아자동차도 원화 약세와 중·소형차 수출 증가로 순이익이 급증했다. 기아자동차의 순이익은 2007년에 비해 739% 증가한 1138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현대·기아자동차 판매가 늘자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의 실적이 덩달아 크게 좋아졌다. 모비스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44% 증가한 1조1865억원에 달했다.

10대 그룹의 지난해 성적에서도 환율 효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기아자동차 그룹과 LG·현대중공업·포스코 그룹이 장사를 잘한 반면 내수 의존도가 높은 롯데그룹과 GS·금호아시아나·한진 그룹은 이익이 크게 위축됐다.


환율 혜택과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는지도 희비를 갈랐다. 즉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한 삼성SDI, 코오롱, 현진소재, 동양제철화학 등이 맹활약했다. 2차 전지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는 삼성SDI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인 2차 전지가 브라운관과 PDP 등으로 구성된 디스플레이 부문과 엇비슷한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코오롱은 신소재인 아라미드 덕에 6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1000억원선을 넘어섰다. 강철보다 강한 섬유인 아라미드를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에서 코오롱을 포함해 3개 사에 불과하다. 그만큼 신소재는 이 회사의 실적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선박용 저속 엔진 부품업체였던 현진소재는 2006년까지만 해도 매출의 65%가 저속 엔진 부문에서 창출됐다. 그러나 이 회사가 기존의 기술을 응용해 개발한 풍력발전기용 부품과 중속 엔진용 부품 등이 지난해 결실을 보아 회사에 큰 힘이 됐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75% 늘었다.

세계적으로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재생에너지 사업과 연관된 기업들이 지난해 대부분 좋은 성적을 냈다. 코스닥 기업 영업이익 상위 20개 사에는 태웅과 현진소재·평산 등 풍력발전 관련 업체들이 포진했다. 이 중 태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003억원을 기록해 코스닥 업체 중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남겼다.

태양광 발전 소재인 폴리실리콘 생산업체인 동양제철화학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폴리실리콘 가격 폭락 사태에도 불구하고 3.2배가량 늘었다. 장기 공급 계약 체결과 시장 진입 시기가 좋았던 게 주효했다. 올해도 환율 효과가 기업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인베스트먼트 박종규 대표는 “환율 수혜를 많이 보는 수출 기업이 내수 기업에 비해 월등히 좋은 실적을 거둘 것”이라며 “시장 지배력과 가격경쟁력이 좋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좋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희성 기자

지난해 상장사 실적

외화내빈 거래소 기업, 매출 24% 늘고 순익은 반 토막
환차손·원자재 값 올라 이익 상당 부분 까먹어
매출 18% ↑ 코스닥 기업 1조8000억 적자로 돌아서

1000원어치를 팔아 남긴 돈이 61원. 여기에서 이자 등 영업외 비용을 제하면 거의 반토막인 33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12월 결산법인·금융업 제외)들의 지난해 성적표다. 매출이 전년보다 크게 늘며 덩치는 커졌다. 영업이익은 다소 줄었지만 악화된 여건을 감안하면 장사는 그런대로 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실물경기가 급랭하면서 적자로 돌아선 기업이 속출했다. 전체적으로 뭉뚱그려 보면 ‘외화내빈(外華內貧)’인 셈이다.

3일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가 발표한 12월 결산법인의 2008년 영업실적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563개 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878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23.7% 늘었다. 반면 영업이익은 56조3121억원으로 2.11% 줄었다. 순이익은 31조9839억원으로 무려 40.9%나 급감했다. 금융업을 제외한 상장사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6.1%로 전년의 7%에서 0.9%포인트 줄었다. 매출액 순이익률은 전년의 6.7%에서 3.3%로 더 낮아졌다. 1000원어치를 팔았을 때 최종적으로 67원이 남던 것이 33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적자를 낸 기업의 비율은 16.9%에서 28.4%로 급증했다.

코스닥 상장 기업(878개 사)의 경우 매출(18.4%)은 물론 영업이익(22.3%)도 전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순이익은 1조315억원 흑자에서 1조8029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앞에서 남기고 뒤에선 밑진 것이다. 이처럼 실속 없는 장사를 한 데는 역시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다. 상반기에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 큰 부담이었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효과는 기업에 따라 달리 나타났다. 즉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득을 본 기업이 있는 반면, 외화부채와 파생상품 탓에 손실을 입은 곳도 많았다. 예를 들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플랜트 제조업체인 성진지오텍은 지난해 1910억원 적자를 냈다.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 등으로 본 파생손실(평가손 포함)만 4000억원에 달했다. 금호타이어는 36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환차손과 지분법 손실로 2003억원의 적자를 봤다.

전반적인 재무구조도 전년에 비해 나빠졌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금융업 제외)의 부채비율은 99.8%로 1년 새 19.2%포인트 상승했다. 코스닥 상장사도 20%포인트 급증한 91.3%를 나타냈다.

10대 그룹도 전체적으로 비슷한 추세였으나 그룹별로는 명암이 엇갈렸다. 이들의 매출은 전년에 비해 18.8% 증가했지만 순익은 거꾸로 18.9% 감소했다. 그룹별로는 현대중공업·포스코·현대자동차의 순익은 증가했고, SK·GS·롯데·삼성·LG는 줄었다. 이에 비해 포스코는 영업이익에서 삼성을 추월하며 수위를 기록했다.

한편 지난해 기업 실적에 영향을 준 가장 큰 변수가 원화 가치였다면 올해는 경기 회복 여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우증권 조승빈 연구원은 “지난해 부진했던 정보기술(IT)이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어 업종별로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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