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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사건' 이런 점은…] 下. '설마 내가' 강심장…안전수칙 안 지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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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4월 8일. 주요르단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한국복음총연합회 소속 목사 일행 일곱명이 이라크에서 납치.억류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이들이 하루 전 바그다드행을 만류하던 대사관 측에 "요르단 및 주변국을 여행한 뒤 귀국하기로 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당초 방침을 바꿔 이라크행을 강행하다 무장세력에 한때 피랍돼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이라크 대사관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이들보다 미리 와 있던 K목사가 당초 목적지인 모술 인근까지 혼자 다녀온 것이다. 당시 이라크 정세는 후세인 잔당의 테러가 극심했던 때였다.

건축업을 하는 사업가 A씨. 2월 말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간다"고 가족에게 알린 뒤 두달가량 행방불명됐던 사람이다. 주이라크.요르단 대사관이 CPA에 협조를 구하고 이라크 체류 한국인에게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4월 말 그가 바그다드에서 암만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의 생존이 확인됐다. 반전운동가 B씨.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 중인 것은 파악됐지만 대사관에 입국 신고를 하지 않아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라크를 여행 제한 국가로 분류하고, 입국 신고제를 도입해도 입출국을 강제할 수는 없다. 심지어 김씨 피살 사건 이후에도 쿠웨이트 교민 6명이 대사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라크로 들어간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이라크뿐이 아니다.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때 현지 대사관이 교민 전면 철수를 권고했지만 절반가량인 5000명은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대사관에서 영사 업무를 맡았던 한 외교관은 "'우리가 한국전쟁도 겪었고, 베트남전도 겪으면서 무사히 살아남았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며 눌러앉은 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라크에는 28일 미군의 주권 이양을 전후해 외국인 납치가 줄을 잇고, 이를 협상 수단으로 삼으려는 무장단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교민 보호는 해외공관의 제1 임무지만 개인의 신념에 따른 행동에 대해선 '자기 책임'이란 정신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도 신변 안전을 책임지고, 국가도 끝까지 국민을 지키는 이중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여행 지역에 대한 사전 경고는 하지만 신변은 자기 책임이라는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그래서 입국한 자국민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4월 이라크에서 납치됐다 풀려났던 한 일본인은 요르단으로 나와 "폐를 끼쳤다.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책임도 묻는 일본 사회의 중압감이 묻어난다. 일본 정부는 풀려난 세명에게 모두 237만엔(약 2370만원)을 청구했다. 전세기 운항비와 진료비다.

이종화 경찰대 교수는 "위험한 지역에 들어갈 땐 국가에 모든 책임을 돌리기보다 자기 신변은 스스로 최대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임준태 동국대 교수는 "일반 시민도 기본적인 자기 방어 요령을 알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면서 "위험지역의 경우 사전에 공관에 연락해 두고, 또 다른 비상 연락망을 갖춰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홍.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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