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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의 쿨한 DNA…팬들과 소통한다, 고로 야구가 즐겁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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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2009시즌이 4일 막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우승과 WBC, 즉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의 감동이 생생한 가운데 시즌을 맞는 프로야구 팬들의 기대는 어느해보다 높습니다. 올시즌을 앞두고 누구보다 가슴 셀레는 선수는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 선수겠지요. WBC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상대로 불방망이를 휘둘러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른 김태균 선수는 네티즌과 활발히 소통하고 수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선수입니다. 네티즌들은 별명 많은 김선수의 이름도 “사실은 부모님이 지어준 별명”이라는 유머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가 움직이면 그때마다 새로운 별명이 생깁니다. 뛰다 넘어지면 ‘김꽈당’, 웃통을 벗으면 ‘김노출’, 혼자 있으면 ‘김왕따’, 이런 식입니다. 김선수의 수많은 별명은 팬들과의 거침없는 소통의 결과일 뿐 아니라 팬들이 김선수에 대해 지니는 친근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이제 시즌이 시작됩니다. 김태균 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수많은 별명을 또 만들어내겠지요. 중앙SUNDAY는 프로야구의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태균 선수의 색다른 유전자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를 4강으로 이끈 주인공은 이승엽(33·요미우리 자이언츠)이었다. ‘국민타자’라는 거대한 수식어가 붙은 선수다. 또 ‘코리안특급’ 박찬호(36·필라델피아 필리스)도 있었다.

‘위대한 도전’에 나섰던 한국 대표팀은 지난달 제2회 WBC에서 준우승 기적을 이뤘다. 박찬호와 이승엽이 빠진 야구 대표팀의 주역은 ‘김별명’ 김태균(27·한화 이글스)이었다. ‘의사(義士)’ 봉중근(29·LG 트윈스)도 있었다. 별명부터 다른, 젊고 친근한 국내 선수들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태균은 50명 가까운 메이저리그 타자를 제치고 홈런(3개)과 타점(11개) 부문 1위에 올랐고, 올스타 성격의 ‘올 토너먼트 팀’ 1루수로 뽑혔다. WBC는 김태균의 팬에게도 아주 특별한 무대였다. 그들의 인터넷 스타가 국제적인 스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네티즌이다

김태균. 야구 팬에겐 꽤 유명한 선수다. 그러나 박찬호·이승엽만 아는 일반인에겐 알 듯 말 듯한 이름이었다.

김태균은 그라운드에서보다 인터넷에서 더욱 대접받는다. 본명보다 ‘김별명’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다. 김태균은 인터넷에서 이름 대신 ‘김○○’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김태균 별명 종합 282개’ 등의 글들이 넘쳐난다. 매일 몇 개씩 추가되는 그의 별명을 다 모은다면 1000개는 거뜬히 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별명을 가진 인물은 없었으리라.

김태균은 지난달 22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WBC 준결승전을 앞두고 미국 중계진을 찾았다. 그러고는 “누나가 아들을 출산했는데 방송으로 축하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해설자가 “홈런을 치면 전해 주겠다”고 답했는데, 김태균은 2회 투런홈런을 때렸다. 덕분에 김태균이 조카를 얻은 사연은 ESPN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 얘기가 전해지자 김태균은 10개가 넘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김삼촌’ ‘김자상’ ‘김청탁’ ‘김로비’ ‘김거래’ 등.

인터넷에서 김태균 ‘별명 짓기’는 놀이 문화다. 김태균이라는 친근한 캐릭터에 네티즌이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오면서 별명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야구에 관심이 없고 김태균을 몰랐던 이들도 별명을 짓다가 그의 팬이 된 경우도 많다.

별명 중엔 너무하다 싶은 것들도 있다. 스타 선수를 지나치게 희화화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또래들처럼 김태균도 네티즌이다. 미니 홈페이지를 직접 운영하고 메신저도 열심이다. 다른 스타들과 달리 그는 팬과도, 기자와도 ‘일촌’을 맺는다. 김태균은 “2006년부터 하나 둘씩 별명이 생기더니 이젠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재미있다. 가끔 서운할 때도 있지만 나도 내 별명들을 보면서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별명 주인공이 마음을 열자 별명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누가 그의 홈페이지에 사진 하나를 올리면 거기서 연상되는 수많은 별명이 댓글 형태로 만들어진다. WBC가 한창일 때도 김태균은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서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 자신의 별명이 늘어나는 것을 즐겼다.

나는 김별명이다

김태균은 WBC 이전까지 미완의 대기였다. 그는 1990~92년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장종훈(한화 코치)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2001년 입단했다. 그해 타율 0.335, 20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97년부터 홈런왕을 다섯 차례나 차지한 이승엽이 2004년 일본으로 떠나자 야구인은 다시 김태균에게 기대를 걸었다.

김태균은 데뷔 8년째인 지난해 처음 홈런왕(31개)에 올랐다. 이승엽이 2003년 기록한 56개, 장종훈이 92년 때려낸 41개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 야구인은 이승엽이 되지 못한 김태균을 안타까워했다. 여느 유망주라면 견디기 힘들 만큼의 스트레스였다.

김태균은 선배들과 달리 홈런보다 출루에 욕심이 많은 타자다. 매년 25~30홈런 정도를 기록하면서도, 평균 3할 이상의 타율을 올렸다. 팬들은 계속 꾸준한 성적을 내는 김태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김태균의 소탈한 행동, 그리고 다채로운 표정에 네티즌의 재치가 어우러져 인터넷에서는 별명 짓기가 진행 중이다. 김태균은 홈런보다 훨씬 더 많은 별명을 얻었다.

김태균은 2006년 WBC에서 이승엽·최희섭의 뒤를 받치는 백업 1루수였다. 7경기 동안 단 3타석(1타수 무안타)에만 나섰다. 한국이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다들 대형 태극기에서 세리머니를 펼칠 때 김태균은 우왕좌왕하며 작은 태극기를 들고 뛰었다. 이때 ‘김우왕’ ‘김소외’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별명 소재다. 뛰다 넘어지면 ‘김꽈당’, 중심을 잃으면 ‘김뒤뚱’이다.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 ‘김소녀’, 하품하다 걸리면 ‘김하품’이다. 듣기 좋은 별명만 있는 건 아니다. 혼자 있으면 ‘김왕따’, 웃통을 벗으면 ‘김노출’, 수비 때 급소를 맞고 쓰러지자 ‘김고자’다. 심지어 ‘김태균은 부모님이 지어준 별명’이라는 농담도 있다.

나는 4번 타자다

김태균이 야구를 잘하지만 박찬호·이승엽만큼은 아니다. 선배들이 이를 악물고 야구와 싸웠다면 김태균은 야구를 즐긴다. 박태환(20)이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한 서린 눈물 대신 ‘쿨’한 미소를 보였던 것과 비슷하다.

네티즌은 김태균의 야구보다 그의 캐릭터에 더 관심을 가졌다. “나는 장동건을 닮았다”고 뻔뻔하게 우기고, “내 몸무게는 110㎏”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친근하고 유쾌한 김태균은 네티즌의 우상이었다.

그들의 꿈이 실현된 무대가 WBC였다. 김태균은 이승엽이 빠진 대표팀의 4번 타자로 나섰고, 3년 전 이승엽이 그랬던 것처럼 폭발했다. 그는 홈런 3방을 모두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서 뽑아냈다.

김태균은 국제 대회에서 거의 무명이었다. 그의 앞엔 늘 이승엽이 있었고,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한 베이징올림픽에선 라이벌 이대호(27·롯데 자이언츠)가 활약했다. WBC에서 김태균을 본 일본 리그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파워도 뛰어나지만 정확한 스윙을 가진 타자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WBC에서 김태균에게 투런홈런(3월 7일)과 결승타(3월 9일)를 얻어맞은 일본은 올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그를 스카우트 우선순위에 올려놨다.

한국 야구는 이승엽과 김동주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면서 위기감에 휩싸였다. 그런 우려를 김태균이 씻어냈다. 네티즌 별명 놀이의 소재가 대한민국 4번 타자로 우뚝 선 것이다. 항상 이승엽에 미치지 못했던 김태균이지만 이번엔 이승엽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화력을 보였다.

꿈같은 시간을 보낸 김태균은 “예상 밖의 성원에 너무 놀랐다. 팬들에게 선물을 한 것 같다. 나도 동료와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네티즌 김별명’다운 대답이다. 야구가 곧 전쟁이었던 선배들이 말했던 소감과도 많이 다르다. 그런 그의 앞에 새 시즌이 시작되고 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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