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젊은 연구자들에게 희망 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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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지식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적절한 활용이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그러기에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첨단기술 전쟁에 대비하고, 대학의 교육.연구 수준을 높여 창의적인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국가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 왔고, 두뇌한국21(BK21) 사업과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NURI) 등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려 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기반 사회에 대비하는 이러한 정책들이 체계적이고 일관성있게 추진되지 못해 여기저기에 커다란 허점들이 드러나는 것이 문제다.

*** 연구비, 집단적 연구에 주로 배정

아마도 그 대표적인 예가 지식기반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창의적인 고급 연구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일 것이다. 정부는 5년 전 BK21 사업을 통해 대학원 연구인력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고 앞으로 NURI 사업을 통해 대학생에 대한 지원도 구체화할 것으로 기대되나, 박사 학위를 받은 고급 인력에 대한 대책은 막막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부분의 인문사회계열 박사 학위 취득자는 시간강사로 기약없이 여러 대학을 전전하고, 자연과학계열에서는 임시직인 박사후연구원이나 비정규직으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몇 년을 근무해야 한다. 또한 능력있고 운이 좋아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정규직을 얻더라도 이들이 독립된 연구자로 성장하는 데는 무수한 장애가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신규 임용된 교수들이 연구비를 신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현재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신진교수 연구과제 사업과 한국과학재단의 젊은 과학자 연구활동지원 사업이 있는데, 이들 사업은 예산이 너무 적어 신청자의 10~25%밖에 지원을 못하는 실정이다. 즉 10명 중 7명 이상의 신임 교수는 연구비가 없어 자신들의 연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박사 학위 취득 전후 10년 정도가 가장 창의적이고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는 시기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박사들은 이 귀중한 시기를 거의 허송하는 셈이다.

이처럼 젊은 연구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빈약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가 너무 집단연구 위주로 집중화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진 연구자에 대한 예산은 위의 두 프로그램을 합해야 165억원(2004년)에 불과한 데 비해 과학기술부의 대표적 집단연구 사업인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은 그 10배가 훨씬 넘는 2200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물론 연구개발 사업의 성격상 집단연구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막대한 예산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원천기술의 뿌리가 되는 창의적 개인연구를 활성화하고 유능한 신진 연구인력을 양성하지 않고, 목적지향적인 집단연구로 선진국을 뛰어넘는 기술적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공무원 당장 성과있는 연구 선호

사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점을 지적해 왔지만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더욱 큰 문제다. 이는 결국 시스템의 결함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즉 현재는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입안과 추진을 공무원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몇 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이들에게는 장기간에 걸친 기반조성형 사업보다 당장 성과가 나오는 목적지향적 대규모 사업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초체력을 다지는 노력없이 세계를 제패할 원천기술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이제부터는 연구개발의 전 주기를 보며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침 정부에서 과학기술 연구개발 행정체제 개편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전문성을 살리며 장기적 안목에서 정책을 펼 수 있는 체제가 되기를 바란다. 만일 새로운 행정체제에서 젊은 연구인력의 직업적 불안정성을 해결하고 신진 연구비를 대폭 늘리는 정책이 최우선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면,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것만으로도 성공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