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 되살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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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1000년 전 글씨를 찾아 30년을 헤맨 이가 있다. 금석문 연구가 박영돈(73·사진)씨다. 그는 최근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비문의 원형을 되살렸다. 신라 명필 김생(711~791)의 글씨를 집자(集字)해 고려 광종대인 954년 세운 탑비다. 3360여 자가 새겨진 탑비는 김생 서예 연구의 보고로 통하지만 세월에 마모돼 글씨가 온전치 않다.


“30년 전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직접 탁을 한 백월비본을 손에 넣었는데 ‘정희수탁(正喜手拓)’이란 인장이 찍혀 있었어요. 해동 제일이라던 추사도 김생 앞에선 감히 호를 쓰지 못하고 예를 갖춘 것이죠.”

그런 김생의 원형을 찾기 위해 버클리대 아사미문고까지 찾아갔다. 30년간 수집한 여러 탁본 중 글씨가 잘 살아있는 부분을 골라 짜맞췄다. 탑비에 금이 가 알아볼 수 없었던 복자(숨은 글자) 10자 중 9자도 찾아냈다. 탁본에 가묵(검은 바탕에 먹을 덧칠해 흰 글씨를 도드라지게 하는 기법)을 하니 신의 경지에 이른 명필이 살아났다. 박씨는 군위 인각사 일연선사비(보물 제 428호), 춘천 청평산 문수원기비의 비문도 같은 기법으로 복원한 바 있다.

“문수원기비를 복원할 땐 신품사현(神品四賢)에 드는 탄연의 글씨에 심취했지요. 그런데 김생의 것을 되살리고 보니 얌전한 처녀같은 탄연의 글씨에 비할 바 아닙니다. 김생이 과연 신품제일이로구나, 왕희지를 능가하는 글씨가 이 땅에 있었구나 싶더군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돋보기를 쓰고 확대경을 들이대며 섬세하게 붓질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돈 되지 않는 일을 배우려는 후학이 없어 오롯이 혼자의 일이었다.

“죽기 전에 가묵 작업을 마쳐놓으면, 후세에 누군가 각을 떠 그 글씨가 몇 천년 이어지도록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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