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올가미' 시어머니역 윤소정…서늘한 목소리로 실감나는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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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연극배우 윤소정 (53) . '신의 아그네스' '첼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으로 유명한 이 중견 여배우는 자신을 "불륜전문 배우" 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선이 뚜렷한 윤곽 때문에 무대에서는 에로틱한 분위기가 최고인 여배우로 꼽혀 왔다.

그런 그가 스크린에서 섬뜩한 사이코로 변신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김성홍 감독의 '올가미' 가 관객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는데는 바라보기만 해도 서늘한 분위기와 목소리로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해간 윤소정의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시어머니역은 대한민국에서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나를 선택하는 안목을 지닌 감독이라면 믿을 수있다는 확신도 섰구요" 그가 이렇게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있는 것은 오랫동안 연극무대에 서면서 자신이 상황설정만 되면 자연스럽게 극중 인물에 동화되는 연기자라는 점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제 얼굴은 사실 참 재미있어요. 무서운가 하면 천진스럽고, 어떤 때는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하구요. 상황만 이해하면 자연스레 연기가 되거든요. 시어머니 진숙 역은 게다가 내 목소리 덕을 많이 봤지요. 그냥 내뱉는 대사 한 마디도 싸늘하잖아요" 그래서 그는 출연하기로 한 순간 연극배우에게 흔히 보이는 과잉연기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감독이 연극배우인 나를 캐스팅했을 때는 연극적인 연기의 기대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진숙이란 캐릭터를 만들어갔습니다" 탤런트 오현경씨와의 사이에 장성한 남매 (아들은 미국서 패션 공부, 딸 오지혜는 연극배우) 를 둔 그는 "영화에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흉기로 내리치는 등 좀 심해서 그렇지 고부간은 사실 영원한 라이벌이죠. 심리적인 가해는 흔하잖아요. 우린 남아선호에 여성들이 자기 일이 없어서 더 그렇구요. 그래서 아마 영화가 많은 주부들에게 공감을 줄 거에요" 라고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자신도 처음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가 오현경씨의 귀를 후벼주는 모습을 보고 "피가 거꾸로 서더라" 고. 다시는 나 이외의 여자에게 안기지 말라고 야단을 쳤단다.

배우가 소화해낸 연기와 대사만이 관객에게 다가갈 수있다는 생각에 주변에 외아들을 둔 사람들의 일화들을 많이 듣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공감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고부간의 갈등을 극대화해 과장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최대한 수용했다.

관객들의 숨소리마저 느끼는 연극무대는 "클라이맥스에서 희열을 느끼는 섹스와도 같다" 고 표현하는 그는 "영화는 연극보다 많은 관객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있어 좋긴 하지만 유명해지는게 불편해서 부담스럽다" 고 말한다.

안그래도 요즘 길을 지나면 '올가미' 를 이야기하면서 "무섭다" 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볶았다" 며 이미지쇄신에 신경쓰고 있다.

이 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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