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외국인 주식투매 증시침체 가속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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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본 경제가 외국인 투자가의 이탈로 열병을 앓고 있다.

주식.채권.엔화 시장에서 이른바 '일본 팔기 ' 가 진행되고 있다.

닛케이 평균지수 (2백25종목) 는 13일 오전 한때 전날보다 339포인트가 폭락, 15, 094.81을 기록했다.

2년2개월만의 최저치다.

엔화 시세도 달러당 1백26엔대로 밀렸고 채권 가격도 폭락해 장기 금리는 1.7%대로 폭등했다.

주식.엔화.채권가격이 동반 폭락하는 트리플 약세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혼란은 주가 폭락에서 출발했다.

지난 4월 소비세율 인상 이후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고 동남아 경제불안으로 이 지역에 1천2백억달러를 빌려준 일본 금융기관들의 경영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며 외국인 투자가들이 투매에 나섰다.

올들어 7월까지 외국인들은 3조2천억엔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그러나 8~10월 사이에는 8천억엔의 순매도로 돌아섰다.

현재의 주가침체는 92년이나 95년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외국인 투매가 집중된 은행.증권주의 시가총액 비중은 9년전에 비해 10%포인트나 떨어졌다.

주가폭락으로 보유주식에서 평가손이 난 금융기관들은 손실 만회를 위해 채권을 팔아치우고 유로채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적자 국채를 발행할 것이란 소문도 한몫을 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반년만에 달러당 1백26엔대로 떨어진 것은 이처럼 성장율.금리 등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화됨에 따른 현상이다.

특히 엔화 매도는 미국계 헤지펀드가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을 좀체로 진정시키기 힘들다는데 있다.

일본경제에 대한 신뢰회복이 전제조건이지만 이를 충족시킬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0.5%인 재할인율을 더 이상 내릴 여지도 없고 재정자금 투입도 곤란하다.

물론 조심스런 낙관론도 없지 않다.

동남아에 빌려준 1천2백억 달러중 대부분이 달러표시여서 환차손 염려가 없고, 그중 절반을 현지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에 대출해주었다는 점에서 주가폭락은 과민반응이란 지적이다.

일본의 트리플 약세는 한국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화 평가절하의 영향을 반감시키고 도쿄의 주가 폭락이 서울을 직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닛케이 평균지수가 1만4천대 밑으로 떨어질 경우 홍콩의 주가 폭락때보다 더 큰 충격을 세계 증시에 던질 것이라는 암울한 시나리오가 도쿄에 나돌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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