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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경찰 ‘퇴출제’ 꺼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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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스분석강희락 경찰청장이 30일 “흐트러진 경찰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대책을 내놓았다. 퇴출제 도입, 비리 내사 전담팀 신설, 자정운동 등이 골자다. 경찰관들의 잇따른 물의로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흉기’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나온 조치다. 서울 강남지역 일부 경찰관은 최근 강남지역 유흥업소 등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복을 입고 강도를 저질렀고, 택시기사를 때려 숨지게도 했다.

강 청장은 “비리 경찰관은 소수지만, 그 가능성이 끊이지 않고 잠복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문제의 뿌리가 ‘사람’에 있음을 인정했다. 경찰관 자질을 높이기 위해 두 갈래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먼저 직권면직 제도를 적극 활용키로 했다. ‘부적격 경찰관’ 기준을 세운 뒤 대상자를 솎아내는 작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부적격 경찰관들을 상대로 4주간 교육을 시킨 뒤 수사부서가 아닌 곳에 다시 배치할 계획이다. 이어 1년간 두 차례씩 직무 향상 여부 등을 심사한다. 여기서 다시 부적격 판정을 받는 경찰관은 징계위원회에 넘겨 직권면직(해직) 등의 방법으로 퇴출시키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조길형 경찰청 감사관은 “법에 규정된 직권면직 제도와 올 초 도입한 부적격자 사교육 제도를 결합해 퇴출 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새로 경찰관을 뽑을 때도 면접의 전문성을 높이기로 했다.

경찰은 비리 내사 전담팀도 강화하기로 했다. 경찰청에 특별조사반을 두고, 지방경찰청에도 전담반을 설치키로 했다. 소속 경찰관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서울의 경우 금품수수·직무태만 같은 경찰 비위는 지난해 257건을 기록했다. 2007년의 143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결국 경찰은 ‘철밥통 깨기’와 ‘사정 칼날’의 두 고삐로 기강을 다잡겠다는 포석을 깐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만 걸러 낸다고 비리가 척결될까. 물론 서울시를 중심으로 확산한 ‘무능 직원 퇴출제’가 경찰에서도 정착되면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란 기대도 있다(이주락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그러나 대책이 너무 원론적이라는 소리가 많다. 내부고발제 강화안을 보자. 동국대 곽대경(경찰행정학) 교수는 “조직 특성상 고발자 신원이 밝혀지기 쉽다. ‘왕따’를 걱정해 누가 고발하겠나”고 했다. 그는 “비밀보장 같은 보다 완벽한 시스템이 아쉽다”고 했다. 내사 강화도 마찬가지다. 일선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는 “감찰팀이 업소를 돌며 형사들이 돈을 요구하는지 묻는다는 건데, 비리는 업주들과 유착해서 생기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번 조치를 놓고 경찰 수뇌부가 바뀐 뒤 잇따른 비리가 터지자 곤혹스러운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급히 대책을 내놓았다는 시각이 있다. 좀 더 실질적이고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큰 그림’으로 성과급, 수사권 조정 문제, 승진 시스템 등을 만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기강 확립은 ‘두더지 게임’이 아니다. 튀어나올 때마다 망치로 친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지금껏 경찰은 청문감사관 도입(1999년), 비리신고 보상금제(2004년) 같은 제도를 도입했지만 비리는 여전하다. “궁극적으로 ‘경찰 사기’를 높이는 여러 제도를 만들어야 비리가 줄어든다(이성용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김준술 이슈&트렌드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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