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침술과 서양의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신세대' 라고 해도 좋을만한 어떤 젊은 한의사의 흥미로운 경험이다.

어느날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중년남자가 찾아왔다.

사고로 잘려 없어진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라는 호소였다.

통증이 있는 부위와 대칭되는 다른쪽에 침을 놓아도 경락 (經絡) 의 흐름으로 이 자극이 전달돼 진통효과가 있다는 침구학 (鍼灸學) 이론에 따라 성한 다리에 침을 놓고 자극을 줬더니 통증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통증은뇌에서 인식하므로 그 통증의 정체는 현대의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성한 다리에 침을 놓아 없어진 다리의 통증을 잠재운다는 것은 서양의학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한의학에 있어 인체에 흐르는 기 (氣) 의 순환통로인 '경락' 과 그 경락에 따라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경혈 (經穴)' 의 신비다.

하나의 조그마한 예에 불과하지만 이 신세대 한의사의 불만은 한의학의 이런 신비가 서양의학에 의해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의학에 대한 서양의학의 의구심과 이질감에 대해 한의학 역시 자존심과 배타적 대응으로만 맞선다고 꼬집는다.

가령 발목 관절에 인대가 늘어난 수만명의 환자는 매일 매일 정형외과 의사와 한의사의 눈치를 재주껏 살피며 치료받아야 하는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의이런 현실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서 의학의 접합이 시도돼 왔다.

유럽에서는 수십년전부터 수술환자의 마취등에 침구학을 응용해 왔으며, 침술.안마.지압.약초 등 이른바 '대체 (代替) 의학' 을 꺼리던 미국이 동양의학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92년부터의 일이다.

의회는 그 연구에 2백만달러의 예산을 승인했고, 캘리포니아대의 한 의학박사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비견할만한 일" 이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매년 인플레율의 2~3배로 치솟는 의료비로 골치를 앓아 온 것이 이유였다.

미 국립보건연구원 (NIH) 이 5년에 가까운 연구.검토 끝에 침술의 과학적 효과를 '부분적' 으로나마 공인하기에 이른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우리도 한.약 분쟁이니 뭐니 티격태격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양쪽이 서로 힘을 합쳐 저렴한 치료비로 건강을 도모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