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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재 교육에 ‘과외’ 잣대를 대지 마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과외 문제처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거의 매년 논란이 되는 이슈가 또 있을까?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계기로 돈 많이 드는 사교육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사교육 경쟁을 없애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해 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노력은 옳고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육의 수준을 높여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의 과열 경쟁을 피하고 좀 더 자유롭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나 교육기관의 이런 정책 역시 정당한 예외를 인정하고 탄력 있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중 대표적인 분야가 예술영재 교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사교육을 입시와 내신을 위한 과외로 인식하고 있어 특기(特技) 계발이나 예술ㆍ체육 교육까지 필요 이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 ‘문화 강국’을 지향하는 나라다. 문화의 중심과 선봉은 훌륭한 예술가와 스타들의 몫이다. 이런 인재를 많이 배출하려면 ‘과외’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개인교육’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예술 하는 사람들이 학교 수업으로만 성공한 일이 있었던가? 도예공이든 서예가든 불후의 명작을 남긴 예술의 선배들은 큰 스승의 문하생으로서 수없는 ‘과외’를 통해 자신을 연마해 성공을 거뒀다. 음악 부문에서 내가 아는 성공한 음악가 가운데 학교 수업만으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나와 음악을 같이한 동생 경화ㆍ명훈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선생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였다. 미국의 전설적인 연기 코치 스텔라 애들러(Stella Adler)를 사사한 말런 브랜도, 로버트 드니로, 워런 비티 등도 개인 수업을 받았다. 그래서 예술 교육의 경우 중요한 것은 학교가 아니라 스승이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예술인의 경력에 어느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보다 누구한테서 배웠다고 명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얼마 전 터져나온 음악대학 교수들의 교외 마스터클래스 논란을 보면서 나는 과외 문제가 상식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교수 신분으로 공개 레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시간 제약으로 직접 가르칠 수 없는 학생들에게 가끔 이런 공동 레슨을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울뿐더러 어느 나라에서나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다. 이런 과정에 만약 부정한 요소가 개입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이지 레슨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많은 국제 수준의 음악제나 음악 캠프에 음대 교수들이 국내외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다는 말인가? 또 레슨은 집에서 하면 안 되고 학교에서만, 학기 동안에만 하라고 하였던가? 나를 3년간 가르쳐 주신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자주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 댁에서 그분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옛얘기와 옛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교실에선 접할 수 없는 많은 귀중한 것을 배웠다. 이제는 전설 속의 인물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Jasha Heifetz) 선생님도 그분 댁에서 만났고, 그분의 친구분들과 어울려 실내악도 하였다. 여름방학이면 또 다른 장학금을 받아 다른 선생님의 뮤직 캠프에 가 실내악을 배우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나만 이렇게 값진 경험을 한 것이 아니다.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요점은 영재를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그들 특유의 경험과 예술ㆍ철학을 자유스럽게 전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가급적 제자들과 이런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하지만 언제나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학생으로서, 연주가로서, 교수로서 한번도 수업과 활동의 제약을 받아본 일이 없고, 교수들이 교육 외의 문제로 염려하는 것을 본 일도 없다.

예술 교육에 규제를 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행히 정부에서 많은 규제를 일몰제로 폐지한다고 한다. 예술영재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부터 폐지 대상으로 삼았으면 한다. 교육 불평등 해소와 예술영재 교육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영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그들의 특별 교육을 위해 장학금, 악기 대여 등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국내외 교수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후원하는 것이다.

정명화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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