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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숨진 미국 샘 풀러 감독…폭력묘사 탁월 'B급 영화' 대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지난달 30일 외신은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배우겸 작가였던 새무얼 풀러 (샘 풀러)가 로스엔젤레스 자택에서 향년 86세로 타계했다고 각국에 타전했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지명도가 낮아 대부분의 매체들이 소홀히 취급하고 넘어갔지만 40여년에 걸친 감독으로서의 그의 역정은 동시대 영화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마틴 스코세지감독이 "나는 '성난 황소' 의 복싱장면을 찍으면서 풀러의 51년작 '철모 (The Steel Helmet)' 의 전쟁장면으로부터 영감을 상당히 받았다" 고 거리낌없이 고백했고 쿠엔틴 타란티노와 풀러는 상대를 높이 평가한다며 공개적으로 서로 추켜 세우기도 했다.

미국의 어느 평론가가 말했듯이 "90년대에 독립영화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풀러는 이미 40년대말과 50년대에 이미 그것을 하고 있었다" . 이처럼 그는 이른바 저예산의 B급영화를 꾸준히 만들면서 거기서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생산해 냄으로써 할리우드 시스템에 갇혀서도 자기 세계를 구축한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시각적인 쾌락을 관객들에게 안겨주는 폭력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이름을 떨쳤다.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나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등이 풀러 영화의 영향권 안에 있음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의 영향력은 유럽의 아트 시네마에까지 뻗쳤다.

사실 '작가' 로서의 풀러를 발견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50년대 프랑스의 유명한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의 젊은 평론가들이었다.

그들은 고전적인 스타일과는 다른 편집방식과 화면구성 (미장센) 으로부터 풀러에게만 고유한 스타일을 찾아냈던 것이다.

특히 60년대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나 70년대 독일에서 새로운 영화운동을 주도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빔 벤더스같은 감독들이 그의 영화세계를 경애해 마지 않았다.

그래서 풀러는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 벤더스의 '미국인 친구'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1911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난 풀러는 감독이 되기전 신문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으며 2차대전때는 북아프리카와 유럽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 49년에 데뷔작 '나는 제시 제임스를 쐈다' 를 내놓았다. 특히 참전경험을 살려 여러 편의 주목할만한 전쟁영화를 내놓았다.

냉전시대에 한국전에 개입한 미국에 초점을 맞춘 세 영화 '철모' '장착된 총검' (51) '지옥같은 만조' (54) 는 극단적인 폭력묘사와 함께 공산주의에 대한 광적인 혐오감과 극단적인 애국주의로 악명이 높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양단으로 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적인 성찰보다는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그를 두고 일부에서는 파시즘에 물든 보수반동주의자로 비난하기도 하는 것이다.

냉전분위기와 관련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 '남부거리의 소매치기 (Pick Up on South Street)' (53년) 이다.

60년대 이후 풀러의 영화는 정체성의 위기에 빠진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게 된다.

특종을 건져 풀리처 상을 타보려는 야심에 이끌린 기자가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취재하러 갔다가 되레 정신병자가 된다는 '공포의 낭하 (Shock Corridor)' (63) 나 새 삶을 꿈꾸는 매춘부 출신 여인이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살아가다가 그 마을의 모범시민과 사귀지만 알고 보니 그 사나이는 아이를 학대하는 표리부동한 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는 내용의 '네이키드 키스 (The Naked Kiss)' (64) 등이 이런 흐름에 있는 대표작들이다.

아쉽게도 30편에 가까운 풀러의 작품중 국내에 비디오로 소개된 것은 '마견 (WhiteDog)' (82)' 과 마담 엠마 (Street of No Return)' (89) 둘 뿐이다.

'마견' 은 별 인기없는 여배우가 길거리에서 하얀색 개를 주어다 키우는데 그 개는 흑인만을 물도록 훈련된 개라는 것이 밝혀진다는 스토리로서 인종차별에 대한 풀러의 반감이 담겨 있다.

'마담 엠마' 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 유명 가수가 그 행각이 들통나 그녀 남편으로부터 성대를 절제당한 뒤 초라한 모습으로 거리를 떠돌게 된다는 얘기다.

전성기 때의 풀러의 영화세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 일단은 읽어 볼 수는 있는 작품들이다.

이영기 기자

1930년대 초 공황기에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궁핍한 관객들을 끌기위해 2편 동시상영 형태를 유행시켰다.

즉 한편의 요금으로 두편을 보여준다는 마케팅 전략을 편 것이다.

이 때 주영화 (A급영화)에 딸려서 상영되던 영화가 B급영화다. 적은 돈으로 지명도 낮은 배우를 써서 스릴러물이나 서부영화, 갱영화같은 장르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다.

2편 동시상영 형태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이 때의 흔적이 남아 B급영화라고 하면 군소영화사들이 일정한 관객을 노리고 적은 예산으로 만드는 장르영화를 통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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