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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부산 빈소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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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씨의 빈소가 마련된 부산의료원에는 갈수록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김씨의 시신이 귀국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26일에만 조문객이 1000명을 넘어섰다. 김씨의 시신이 빈소에 도착하기 1시간전인 이날 오후 7시쯤엔 시민들 3백여명이 부산의료원에 몰려 김씨의 시신을 맞을 준비를 했다.

▶ 고 김선일씨의 유해가 26일 오후 부산의료원 빈소에 도착하자 큰누나 향림씨가 관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김씨의 시신 운구에 맞춰 '이라크 파병반대 부산시민평화행동'은 26일 오후 6시 부산진구 부전동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고 김선일씨 부산시민추모대회'를 열었다.

전국 365개 시민.사회단체 연합체인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 국민행동'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하고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 진상규명 및 전국 장례대책 위원회'(가칭)를 구성하는 한편 장례에 맞춰 범국민적인 추모행사를 열기로 했다. 국민행동은 김선일씨 유족의 뜻을 존중해 장례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출신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26일 오후 5시 15분쯤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2004 부산국제청소년 축구대회' 한국과 브라질 전을 관람하기 위해 이날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찾았던 본프레레 감독은 인근에 김씨의 빈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공항으로 가던 승용차의 방향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본프레레 감독은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무고한 사람이 희생됐다. 김씨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고 김선일씨의 부친인 김종규(69)씨와 모친인 신영자(59)씨는 인천국제공항으로 상경하지 못한채 부산의료원에서 아들의 시신을 맞기로 했다. 부모들은 "인천까지 마중을 가서 1년만에 돌아오는 아들을 맞아야 한다"며 강한 상경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여러번의 실신끝에 탈진한 이들의 건강을 염려한 친지들의 거듭된 만류로 부산의료원에 남기로 했다.

부산=김관종 기자

○···26일 오후 7시25분께 김해공항 21번 주기장 에서 대기중이던 큰 누나 향림(41)씨 등 유족들과 친지들은 김씨의 시신을 실은 C-130 군수송기가 김해공항 상공에 모습을 나타내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이어 활주로에 닿은 군수송기가 주기장에 멈춰서자 유족과 주민들은 일제히 '선일아'라며 고인의 이름을 터져라 부르며 오열했다.

큰 누나 향림씨는 고인의 이름을 부르다 정신을 잃고 몇차례 주기장 바닥에 쓰러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군수송기에서 내려진 김씨의 시신은 별도 검역절차없이 경찰의장대에 의해 대기중이던 검정색 캐딜락 운구차로 곧바로 옮겨져 오후 7시40분께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산의료원으로 출발했다.

김씨의 시신과 함께 김씨가 생전에 아끼던 기타와 CD플레이어, 손때묻은 가방 등 유품 4점도 시신을 따라 부산의료원으로 향했다.

경찰의장대 대원은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시신을 모셨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경찰특공대의 삼엄한 경호속에 김해공항을 빠져나간 운구행렬은 경찰 사이카의 호위속에 부산의료원으로 향했다.

김씨의 시신을 태운 캐딜락과 2대의 장의버스로 이뤄진 운구행렬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앰뷸런스와 경찰차량이 뒤따랐고, 이어 수많은 취재차량이 취재경쟁을 벌이며 따라 붙었다.

김해공항 입구부터 공항 인근 주민들이 나와 싸늘한 주검으로 귀향한 김씨를 애도했으며 공항로 등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도로변에도 많은 시민들이 나와 운구행렬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부산금정구청 앞에선 30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김씨의 원혼을 맞았고, 일부 시민들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플래카드를 든 채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김씨 시신이 도착한 김해공항엔 유족과 주민들뿐만아니라 수백명의 공항근무직원들이 일손을 놓은채 시신도착 현장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적셨고, 김해공항 이용승객 100여명도 운구행렬 출발점인 국내선 청사옆 출구로 몰려들어 김씨의 슬픈 귀향현장을 지켜봤다.

이날 김해공항엔 공항 활주로에 경찰특공대가 배치돼 김씨의 시신을 경호했으며 공항 국제선.국내선 청사, 공항입구 도로변에도 3개 중대의 경찰병력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부산=연합뉴스)

○…부친 김종규(69)씨와 모친 신영자(59)씨는 응급실에서 안정을 취하다 시신이 부산의료원에 도착하기 10분전에 빈소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빈소에서 연신 물을 들이키며 초조한 표정이었다. 부친 김종규씨는 아들의 운구차를 눈으로 확인하려는 듯 창문 너머로 바깥을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씨의 시신이 시민단체의 파병반대 시위에 막혀 빈소로 진입하지 못하고 소란이 일자 김씨와 신씨와 두 눈을 감고 혼잣말로 “선일아, 선일아”를 되뇌었다.

○…기독시민운동 부산시협의회 소속 교회들은 이국땅에서 숨져간 고 김선일 씨의 영혼을 달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예배를 장례식때까지 매일 오전,오후 한차례씩 열기로 했다. 유족과 기독교 성직자들로 구성된 장례준비위원회는 조만간 김씨에 대한 보상과 예우, 장례기간, 장지 등을 놓고 정부와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장례준비위 대변인 이동수 목사는 “유가족은 김씨의 시신이 국립묘지에 안장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김선일씨의 시신이 도착한 김해공항 입구에는 인근 주민들이 나와 고행의 품에 안긴 고 김선일씨를 애도했다. 김해공항 이용승객 100여명도 운구행렬 출발점인 국내선 청사옆 출구에서 김씨의 귀향을 지켜봤다. 공항로 등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도로변에도 많은 시민들이 나왔다. 부산금정구청 앞에선 30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김씨의 시신을 맞았고 일부 시민들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플래카드를 든 채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부산=김관종 기자

○···무언(無言)의 원혼이 된 김씨의 시신이 부산의료원에 도착하자 병원 정문앞에 운집했던 4천여명의 시민단체회원 및 일반시민들은 김씨의 이름을 부르며 비통해했다.

부산 서면에서의 '범국민추모대회'를 마친 뒤 거리행진을 거쳐 부산의료원에 도착한 민주노총.민주노동당.전교조 등 부산시민평화행동 회원 1천여명은 시신이 도착하자 병원입구를 가로막은 채 울부짖었다.

이들은 검은리본을 가슴에 달고 촛불을 든 채 '김선일을 살려내라', '파병철회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김씨의 시신을 실은 캐딜락 운구차가 도착하자 병원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집회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영구차 주변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한때 경찰 통제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혼란이 빚어지자 집회를 주도했던 집행부에서 '한발짝씩 물러나라'며 자제를 호소했고 김씨 시신은 도착 20여분만에 겨우 경찰의장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안치실로 향했다.

○···두손을 부여잡은 채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 김종규, 어머니 신영자씨는 운구차가 도착하자 차량을 두팔로 안고 ' 니가 이렇게 돌아왔나'며 대성통곡했다.

누나 미정씨, 동생 정숙씨 등 가족들도 어찌 할줄을 모른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오열했다.

유족들은 경찰 의장대가 대형 태극기로 감싼 관을 내려 안치실로 향하는 동안에도 관을 뒤따르며 '선일아, 선일아'를 부르짖으며 오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시신확인과정에서 유족들과 병원측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병원측은 '시신이 많이 훼손돼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여성 유족들은 시신확인에 참가하지 말아달라'고 했고, 이에 유족들이 '마지막 모습인데 꼭 봐야된다'며 거칠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유족들의 항의가 워낙 거세 희망하는 유족은 모두 시신확인을 지켜보기로 했으나 병원측이 시신확인직전 다시 간곡히 가족들을 설득, 시신확인엔 김씨의 친형과 사촌형 2명만 참석했다.

○···26일 오후 9시께 부산의료원 안치실에 도착한 김선일씨 시신은 유족대표 등이 참관한 가운데 검시 및 시신확인작업에 들어갔으나 절차 문제 등으로 시신확인 작업이 지연되면서 1시간이나 소요됐다.

부산의료원측은 검시용 사진을 찍었으나 경찰측에서 검시 사진 유출을 우려해 별도 CD 롬으로 사진을 인출하기로 하고 병원 컴퓨터에 남은 필름을 삭제하도록 요구해 사진작업에만도 상당시간이 걸렸다.

○···故 김선일씨 시신이 2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김해공항을 거쳐 부산의료원에 안치되는 전과정을 지켜 본 이라크 무장단체와 석방협상을 벌였던 장재룡 본부대사 등 정부 석방협상대표단 일행은 시신 안치가 끝나자 오후 10시30분께 황급히 빈소를 빠져나갔다.

장 대사는 협상과정과 실패원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단계에선 어떤 말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나중에 서울에서 대답하겠다"며 인터뷰를 거절한 채 굳은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故 김선일씨 추도 촛불집회를 벌였던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반시민 등 300여명은 유해가 부산의료원에 도착하자 조문을 하기 위해 빈소로 들어가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30여분간 대치했다.

이들은 '10명씩 줄을 서서 질서있게 조문해달라'는 경찰의 요구를 받아들여 질서 정연하게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故 김선일씨의 유해가 안치된 부산의료원 주변도로는 경찰 전경버스와 조문하려는 일반시민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다.

뒤늦게 유해도착 소식을 들은 조문행렬이 늦은 밤까지 끊이지 않았으며 가족단위의 조문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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