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우리들의 소중한 꿈 어른들은 모르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꼬마 곰 코듀로이, 원제 Corduroy
돈 프리먼 글·그림, 조은수 옮김
비룡소, 30쪽, 7000원

아기 민들레의 꿈
설용수 글, 허구 그림, 바우솔, 32쪽,7800원

세상에서 하나뿐인 특별한 나, 원제 Bokudake No Koto
모리 에도 글, 스기야마 가나요 그림, 박숙경 옮김
주니어김영사, 36쪽, 8500원

어린이는 어른보다 키도 작고 가진 것도 적습니다. 그저 어른한테 기대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도 무척이나 짧아 매일 한심한 데 눈돌리기 일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없으면 끝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네,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규칙을 배우느라 당황하고 있을 따름이지 속은 꽉 차있다고 말입니다. 어린이는 바보처럼 쓸데없는 게임을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물어보면 예상 밖의 대답을 합니다. 게임이 쓸데없는 줄 어린이도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어른하고 다르게 욕심이 자그마해서 시간이 조금 남으니까 게임할 여유도 있는 겁니다(정말로 이것저것 욕심이 많은 어른은 도대체 게임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얻는 게 없으니까요.)달콤한 과자, 아이스크림을 기를 쓰고 찾는 어린이도 있지만 많은 어린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몸에 얼마나 좋은지 또는 해로운 지 기억력 나쁜 어른보다 훨씬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에게 심각한 피해만 주지않으면 잘 알아서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지혜로우니까요. 어른들은 고민거리가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따지고들면 유치하기 짝이 없거나 (정말로!) 쓸데없는 고민인 경우가 많습니다. 먹고, 자고 그리고 적당히 놀기. 그게 인생의 핵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은 그 핵심에 여러가지 장식을 얹기를 좋아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얼마나 좋은 곳에서 자고 골똘히 놀거리를 생각하느라 지쳐 결국 김빠진 채 놀게 되지만. 그 많은 것을 고민하느라 어른들의 머리는 터져버릴 지경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명쾌합니다. 솔직하고 정확합니다. 단순합니다. 그들은 미래의 꿈을 꾸는 데에도 어른보다 훨씬 정확하고 간단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꿈을 그린 책들을 좋아합니다.

『꼬마 곰 코듀로이』에는 조금 불쌍한 곰인형이 나옵니다. 몸집도 작은데 가족이 없습니다. 게다가 멜빵 바지에는 단추가 하나 모자랍니다(겨우 단추 두 개만 있으면 충분한 바지입니다). 곰인형 코듀로이는 백화점 진열대에서 자기를 가져갈 새 가족을 기다리지만 모자란 단추 때문에 슬픈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날 밤 단추를 찾아 용감하게 떠나보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얼마전 코듀로이를 만지작거렸던 소녀가 저금통을 털어 나타납니다. 소녀는 코듀로이를 집으로 데려가 단추를 달며 말합니다. “난 지금 그대로의 네가 좋아. 하지만 넌 어깨끈이 단단하게 매여 있는 게 더 편할 거야.” 코듀로이는 어수룩하지만 자기의 모자란 부분을 알며 개선하고자 모험을 감수합니다. 비록 그 모험이 성공하진 않았지만 작은 곰처럼 어린 소녀 덕분에 꿈을 이루게 됩니다. 어린이들은 마음 깊이 단단한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행복하고 싶은 꿈. 아주 단순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꿈에 주렁주렁 장식을 매달아 결국 복잡하게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코듀로이의 꿈은 단추 하나와 새 가족이지요.

우리나라 그림책 『아기 민들레의 꿈』에는 제목에 딱 맞게 꿈을 꾸는 어린 민들레가 나옵니다.

자갈밭에 피어난 언니 민들레와 동생 민들레는 노란 민들레로 가득한 풀숲으로 날아 가고픈 꿈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민들레는 숲으로 소풍을 온 개구장이 꼬마들 손에 뿌리째 뽑힐 위기를 맞습니다. 민들레는 다행히 청개구리의 도움으로 위험을 모면하고 얼마 뒤 언니 민들레는 홀씨가 돼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것을 본 동생 민들레는 언니처럼 홀씨가 돼 풀숲으로 날아가 노란 민들레꽃으로 다시 피어날 꿈을 꿉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특별한 나』에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어린이 요타가 나옵니다. 아주아주 평범해서 길을 지나다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칠 만한 어린이 요타는 자기만의 특별한 사건들로 특별한 ‘나’를 만들어갑니다. 물론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사건을 가지고 말입니다. 모기에 물렸다든지, 강아지에게 과자를 주었다든지 정말 어른이 보기엔 손톱만큼도 특별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요타는 그 모든 게 소중하기만 합니다. 지극히 단순한 사건이지만 그런 몇가지가 겹쳐진 나! 어른들은 그따위 것으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지만 요타는 그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먼저 욕심도 없고 단순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요타에게 나는 ‘나’입니다. 나는 ‘나’이니까 특별한 겁니다. 어린이들은 어른 눈에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실은 알고 보면 명쾌한 해답같은 존재입니다. ‘나’에 대한 정직한 느낌과 확실한 내일의 꿈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이형진(그림책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