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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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그를 거치지 않고는 프랑스 사회학계에서 자리를 붙일 수 없다.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 (67) 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가장 프랑스다운 사회학자' 라는 별칭도 따라다닌다.

프랑스 구조주의 전통에 마르크시즘 비판이론을 결합해 현대사회의 구석구석에 숨겨진 불평등 구조를 탐구해온 그의 사상은 현재 세계 학계에서 핵심 논제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인류학.역사학.정치학.교육학등을 폭넓게 섭렵하며 그동안 발표한 저서도 30여종. 최근 국내에서도 80년대 사회주의 연구붐과 90년대 인기 상승한 프랑스 철학을 잇는 '징검다리' 격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동문선刊)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 (솔) '구별짓기' (새물결) 등 번역서 4종이 나왔으며 계간 학술지 '세계사상' 은 오는 겨울호 특집으로 그를 집중조명할 예정이다.

프랑스 학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강좌교수로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 그동안의 학문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등을 들어보았다.

- 지금까지 주로 계급갈등과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에 눈길을 돌렸는데.

"어느 사회에나 계급갈등이 존속합니다.

일례로 학교를 보세요. 일부에서는 학교가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공정한 기구라고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신분.출신.가족.재산에서 오는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에게 기회는 같다는 식의 평등관을 내세우나 이것은 지배계급의 일방적 논리지요. "

- 다른 분야는 어떻습니까.

"예술.문화.지식도 마찬가집니다.

문화적 소비는 교육수준, 경제력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박물관을 출입하는 사람중엔 경제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

- 그런 면에서 마르크시즘에 대한 입장은.

"나를 두고 왜 마르크시즘을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갈등은 마르크스의 계급결정론과 전적으로 다릅니다. 사회구조도 그가 살던 시대와 확연히 다릅니다. 마르크시즘을 현대사회에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아요. 오늘날의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유연한 이론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미 마르크스를 뛰어넘었습니다. "

-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지배계급.피지배계급의 기계적 분류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동일 계급안에서 취향과 기호, 생각의 차이가 있듯 한 계급내에는 여러 분파가 대립합니다. 때문에 경제적 요소만 고려했던 마르크스의 자본 개념은 문화.상속.사회.교육.신체등 다방면으로 확장돼야 합니다. 나는 지배계급의 메커니즘에 반발하지만 그렇다고 피지배계급도 옹호하지 않습니다. "

- 그렇다면 사회학의 임무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체계적 인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불평등 구조에 대한 비판적 비전을 제시해야 하죠. 물론 학문도 시대.지역등의 조건에 따라 변화하나 나는 이를 체계적인 비교.분석을 통해 극복하려 합니다. "

- 지식인의 역할은 어떻게 정의합니까.

"지난해 10월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비슷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지식인은 사회 각 곳의 갈등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정치에도 간여해야 합니다. 상아탑에 고립된 사회학자는 나의 목표가 아닙니다. 사회는 전문화.다원화했는데 이를 전체적.통합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지요. 오래전부터 전공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불평등한 질서에 비판을 던지는 지식인의 연대도 주장해왔습니다. "

- TV에 대해서도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TV는 문화와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합니다.

TV는 문화의 모든 생산물들을 상업과 돈의 문제로 귀결시키며, 쉬지 않고 쏟아지는 메시지 또한 사람들의 사유 (思惟) 능력을 위축시킵니다.

지식인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

- 최근의 주된 관심사는.

"내년 봄쯤 나올 '남성지배' 의 마지막 정리에 한창입니다. 북아프리카 카빌족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를 토대로 현대인들의 의식구조와 일상에 남아 있는 성차별.폭력의 문제를 드러낼 작정입니다. "

- 한국을 방문할 생각은 없습니까.

"물론 가고 싶지만 1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은 피하려고 합니다. 그 정도로는 한 국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한국의 사회구조.학문구조를 알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은 머물러야 합니다.

기회나 건강을 보며 결정하겠습니다. "

파리 =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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