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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이 더 절실한데” … 공공근로 쿠폰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11년 만에 부활한 공공근로(희망근로)의 급여 지급 방식을 놓고 찬반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일당 3만2000원, 월 83만원의 급여 가운데 절반을 소비쿠폰 등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한 소비쿠폰을 시·도 단위의 해당 지역 전통시장, 동네 수퍼 등에서 사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예상치 못한 비판에 부닥쳤다. 공공근로 대가로 현금과 쿠폰을 섞어 주는 방식이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43조 1항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을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자 정부는 자료를 통해 “(희망근로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생계지원금을 근로와 연계해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복지정책사업”이라며 “참여자는 임금을 통화로 전액 지급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반박했다. 공공근로 참여자는 한마디로 복지프로그램 수급 대상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 전문가 상당수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노무법인 길벗 김성중 노무사는 “공공근로 참여자도 근로자가 맞다”면서 “(쿠폰 지급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데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사회보장 차원이라 해도 근로를 전제로 주는 만큼 명백히 임금이고, 임금은 현금으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정부는 고민에 휩싸였다. 정부는 우선 쿠폰을 좀 더 많이 주기로 했다. 이용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쿠폰에 5% 금액을 얹어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일당은 3만2800원으로, 월 급여는 85만원으로 올라간다.

정부는 또 시비 소지를 없애기 위해 고용정책기본법 시행령을 4월 중 고치기로 했다. 근로기준법 제43조의 단서 규정인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를 활용하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시행령에 쿠폰 지급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하겠다”면서 “노동부·행정안전부와 협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 정도로 논란이 사그라질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공공근로 대상인 중장년층 실직 가장 입장에선 사용처가 제한돼 있는 쿠폰보다는 현금이 더 절실하게 마련이다.

정부가 쿠폰제 고수에 집착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애초 실무진은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 구호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쿠폰을 선호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현금이 소비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면서 “실제 지난해 1400만 명에게 1인당 최대 24만원씩 유가환급금을 지급했지만 53.5%만 소비지출에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금과 쿠폰을 섞는 절충안이 생겨났다. 여기에다 기왕 쿠폰제를 할 바엔 침체한 지역경제 살리기 용도로 활용하자는 구상이 가미됐다. 쿠폰 사용처를 지역 전통시장이나 동네 가게 등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즉 경제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소비도 진작시키고, 지역 상권도 살리겠다는 다목적 카드로 쿠폰제가 선택된 것이다.

한편 정부는 공공근로 급여를 월급은 물론 일당 또는 주급 등으로 근로자 형편에 맞게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공근로 형태가 다양해 일률적인 지급이 바람직하지 않은 데다 월급 형태로만 줄 경우 쿠폰 소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쿠폰 사용기한은 3개월로 한정키로 했다.  

이상렬·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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