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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컬처코드 ⑭ TV속 엄마들은 왜 결혼 반대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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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막장코드’로 MBC 드라마의 오랜 시청률 부진을 깬 일일드라마 ‘사랑해 울지마’. 극중 고모(김미경)는 엄마없는 조카(이정진)를 친자식처럼 키웠으나 자신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 하자, 상대 여자를 때리고 폭언한다. 최근에는 자살소동까지 벌였다. 자식처럼 여겨온 조카에 대한 배신감때문이다. KBS ‘꽃보다 남자’의 강회장(이혜영·사진)도 아들 준표(이민호)를 잔디(구혜선)에게서 떼놓으려 별별 획책을 쓴다. 하나는 국내산, 하나는 일본산 리메이크지만 엄마 유형은 비슷하다.

#멜로드라마에서 자식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는 익숙한 설정이다. 멜로 장르가, 사회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남녀가(주로 경제적 지위 차이가 이유다) 사랑의 힘으로 현실의 벽을 넘어 ‘낭만적 사랑’의 신화를 강화하는 얘기인 탓이다. 여기서 자식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는, 그 사회의 가장 지배적이고 속물적이며 현실적인 가치를 대변한다.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 ‘행복합니다’의 이휘향, 조금 거슬러 올라가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하지원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당기던 표독한 김수미 등이 대표적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인간이 속물이 되는 지름길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식만큼은 모든 사회적 위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기 바란다. 그래서 가능한 사회 시스템의 상층부에 자식을 앉혀놓으려 발버둥친다. 개인적으로 눈물겨운 희생도 감수한다.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기 보다는 ‘안전지대’ 확보가 최우선이 된다.

어쩌면 주구장창, 제 맘에 안들거나 밑지는 결혼을 반대하는 TV속 부모들은, 자식은 나의 연장, 자식의 인생 관리가 내 인생 최고의 목표이며, 결혼이라는 거래에서 손해보는 장사는 죽어도 못한다며 본전 생각을 하는, 현실속 부모들의 반영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징글징글하다. 어디 다른 부모들은 없나?

게다가 자식 결혼 반대하는 이는 모두 아빠 아닌 엄마다. 엄마가 반대하면, 아빠가 중재한다. 대한민국 TV속 엄마들은 백이면 백 자식에게 올인하는 맹목적 모성의 화신들이고, 그 모성의 실체는 속물주의니, 이 정도면 안 그런 엄마들이 집단으로 뿔날 일이다.

최근 여배우들에 대한 TV 인터뷰 다큐 ‘대한민국 여배우로 산다는 것’에 출연한 윤여정은 “엄마로 나온 무수한 드라마에서 하도 자식 결혼 반대를 많이 해 지겨웠다”며 “실제 내 아이들이 결혼할 때는 누구든 오케이하자 다짐하곤 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물론 TV속 엄마가 더 큰 문젠지, 실제 엄마가 더 큰 문젠지는 좀 헷갈린다. 어쨌든 결론은, TV에서도 자기 인생을 사는 독립된 엄마들을 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엄마가 바뀌어야 자식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는 것.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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