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선거법의 문제…'돈드는 선거' 정치권 담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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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의 담합으로 이번 대선도 천문학적인 돈선거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그중 상당부분은 국민의 주머니 (세금)에서 나가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국회에서 통과된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근거로 재정경제원등과 관련예산 편성및 확보작업을 벌이면서 이런 우려가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선관위는 올 대선에서 선거관리로만 5백34억원이 들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규정에 따른 인건비와 홍보비, 투.개표 참관인 수당및 후보들의 인쇄물 발송비와 선전벽보 부착비등의 합계다.

물론 이 돈은 대선을 치르려면 불가피하게 써야 하는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국고에서 후보에게 지급되는 보전비용이다.

92년 선거에서 후보들에게 지급한 보전비는 후보 1인당 6억원 (방송연설 비용)에 불과했다.

김영삼 (金泳三).김대중 (金大中).정주영 (鄭周永) 씨등 3명의 후보가 선거가 끝난 뒤 이만큼씩 찾아갔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다르다.

유효득표의 10% 이상을 얻은 후보에게 지급되는 보전비용이 후보 한사람당 1백27억원. 해당후보가 3명이 될 경우 당락 (當落)에 관계없이 3백81억원이 국가예산에서 지출되는 것이다.

이는 통합선거법이 선거사무원 수당, 방송.신문광고, 인쇄물등의 비용을 국고보조로 지급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94년 통합선거법을 제정하며 이를 국고부담으로 떠넘긴 것이다.

이번의 개정내용이 시빗거리가 되는 것은 세금에서 지출되는 부분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당초 통합선거법은 20회의 방송광고및 7회의 방송연설 비용을 국고에서 보조토록 했으나 이번에 각각 30회, 11회로 늘렸다.

신문광고는 종전까지 1백50회를 허용하고 이중 50회를 국고보조토록 했으나 이번에 총횟수를 70회로 줄이는 대신 모두 국고보조토록 했다.

여기에만 68억9천만원이 지원된다.

87년에는 아예 보전제도 자체가 없었다.

시.군.구별로 세장씩 걸 수 있는 현수막의 제작비용, 전단형.책자형 인쇄물및 선전벽보 제작비용등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선거사무원 (사무장및 시.도연락소장, 사무원 포함) 수당 (35억원) 도 전액 국고지원된다.

여야가 선거공영제등을 명분으로 선거관련 정치비용을 국민부담으로 떠넘긴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선거비용의 상당부분을 국고에서 보전하도록 해놓고도 여야가 후원금 모금액수를 2~3배나 대폭 올린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다. 혁파대상인 고비용 정치구조는 유지하면서 소요비용을 국민들이 떠맡도록 했기 때문이다.

방대한 중앙당및 지구당 기구.인원등은 정비하지 않고 "정치를 하자니 돈이 많이 든다" 며 국민의 희생만 강요한 셈이 됐다.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에 따른 후유증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선 뿐만 아니라 총선거와 지방자치단체선거 때도 각당별로 수천억원의 정치자금 모금을 가능케 했다.

더구나 모금액수를 높여놓고도 어떻게 써야 한다는 규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당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선거자금을 마구 써대도 규제할 방도가 없게 됐다.

사회.시민단체들은 "고비용정치구조는 그대로 둔채 모금방법만 바꿔 혈세 (血稅) 를 쓰겠다는 발상" 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인을 위한 법개정" 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외국어대 이은영 (李銀榮) 교수는 "과연 해마다 수천억원의 막대한 후원금이 깨끗한 정치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많은 여야의원들도 "중앙당및 지구당 조직.인원등을 축소하려는 노력없이 국민에게 부담을 강요한 것은 생각해 볼 문제" 라며 정치권의 자기개혁.자정 (自淨)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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