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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때는 장난감 대신 책을 사준다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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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어린이책 판매가 오히려 늘어난다고 해요. 경제가 어려워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못 사주는 부모들이 대신 책을 사준다는군요.”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만난 『율리시스 무어』『센추리 게임』의 작가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35·사진)는 “불황이 독서 풍토를 도와준다니 고맙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 무어』는 오래된 저택 ‘빌라 아르고’의 비밀을 파헤치는 세 아이의 모험 이야기. 17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에 100만 부 가까이 팔렸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아 2006년 첫 번역출간된 이래 40만 부 넘게 나갔다. “이탈리아와 한국 사람의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란게 그의 분석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바칼라리오는 “지겨운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는 척하며 몰래 소설을 썼다”며 웃었다. 판타지물을 주로 쓰는 이유를 물었더니 “재미있으라고”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내 책을 시작으로 어린 독자들이 책의 재미를 알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도 유년시절 쥘 베른의 SF소설을 읽으며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해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찾는다는 그는 올 도서전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판타지의 퇴조”를 꼽았다. 그 자신이 판타지 작가인데도 “트렌드란 돌고 도는 것 아니겠느냐”는 여유를 보였다.

바칼라리오의 말처럼 24~26일 열린 올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다양한 어린이책 흐름이 고른 지지를 받았다. 특히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주빈국으로 선정된 한국 어린이책이 관심을 모았다.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주빈국관은 첫날부터 성황을 이뤘다. 한병호·정승각·권윤덕·이형진·이억배·이태수·백희나씨 등 한국의 대표적인 그림작가 31명의 작품 64점과 관련 그림책 200여 권이 손님을 맞았다.

주빈국관을 둘러본 프랑스 휘 드 몽드 출판사의 알랭 세레 대표는 “한국 어린이책의 그림은 전세계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보편적인 주제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면서 “이제 전통적인 주제, 동양적인 특성을 내세우던 단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평했다.

1991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도서전에 참가했다는 출판사 초방 신경숙 대표는 “20년 전 존재감도 없었던 한국 그림책이 이제 세계 출판인들의 주목을 받을 만큼 성장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한국 작가의 수상 소식이 많은 것도 한국 그림책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여원미디어의 수학그림책 『미술관에서 만난 수학』(마중물 글, 김윤주 그림)이 볼로냐아동도서전 조직위원회가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나온 그림책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주는 라가치상을 받았고, 총 81명이 선정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도 『달은 어디에 떠 있나』(웅진 주니어)를 그린 장호(47)씨와 『줄줄이 줄줄이』(여원미디어)의 정지예(38) 한재희(29)씨 등 한국 작가 3명이 포함됐다.

볼로냐(이탈리아) 글·사진=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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