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선희 비디오 파일]매츠아른 감독 '화이트 라이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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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죽기살기로 뛰는 축구 선수를 응원하다 '사색의 계절' 을 발로 차버린 느낌이 든다면 핀란드 영화 한 편으로 잔잔한 감동에 젖어보실 것을 권한다.

매츠 아른 감독의 '화이트 라이즈' (영성) .안소니 드라잔 감독의 '소냐' 처럼 세상사에 치이기만 했던 운 나쁜 아버지에 대한 연민, 존경을 담고 있는 영화다.

영민하고 빠릿빠릿한 젊은이가 활개치는 현실인데, 살아보겠다는 열의 외에는 이렇다 할 재주가 없었던 아버지 세대를 회상하는 것은 마음만 어둡게 하는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그런 현실때문에 아버지 세대의 소박한 꿈, 쉽게 사기당하는 순박함,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허풍이 그리워진다.

'화이트 라이즈' 는 어린 아들 마틴 (프레드릭 아덴) 의 귀여운 음성으로 아버지의 일생을 회고한다.

마틴의 아버지 팔레 (피터 하버) 는 1916년 덴마크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재혼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인형극을 선보이다 집에 불을 내고 고아원으로 쫓겨갔다.

가수인 어머니 잉그리드 (제시카 잔덴) 와 사랑에 빠져 마틴을 낳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리비에라.코펜하겐.헬싱키를 떠돌아 다니는 연예인 생활을 하며 언젠가는 나만의 극장에서 멋진 공연을 할 거라고 큰소리친다.

화이트 라이즈 (가벼운 거짓말) 는 필요하면 할 수도 있는 거라던 아버지. 그러나 아들은 밤에 홀로 앉아 우는 아버지를 훔쳐보며 아버지의 꿈이 스러져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힘겨운 인생살이를 유머로 채색하는 '화이트 라이즈' 는 북유럽의 맹랑한 성장영화들과는 달리 아버지 세대에게 응원을 보낸다.

기성 세대를 거부하고 조소하는 것만이 성장의 발판이 아님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옥선희 <비디오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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