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비엔날레 수상작가 전수천 전시회…자연과 문명의 경계 연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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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파르스름하게 떨리면서 방사되는 네온은 그에게 단순한 빛이 아니다.

어둠속에 네온튜브를 따라 흐르는 빛을 그는 문명과 문명이전의 자연을 구분짓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네온빛이 만들어내는 명암은 그래서 발전과 진보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처럼, 또한 점점 멀어져가는 자연을 향한 그리움처럼 흐릿하게도 다가오기도 한다.

그 공간속에 발을 들여놓으면 빛과 어둠에 싸여 삶에 대해서, 문명과 자연에 대해서 잠깐이나마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서양화가 전수천 (全壽千.50) 씨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근작전을 열고 있다.

(29일까지 02 - 724 - 6328) '사유의 공간' 이란 제목 아래 소개된 작품은 평면과 설치작업을 합해 18점. 2년전 베니스에서 토우 (土偶) 와 산업쓰레기 사이에 네온을 설치하고 자연과 문명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애증, 이른바 상실과 혜택의 엇갈린 이미지를 연출했던 연장선에 있는 작업들이다.

토우와 바뀐 것이 달걀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달걀과 생달걀 각각 3천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그 위에 로고스인 빛을 네온으로 설치했다.

알은 모든 생명의 상징. 자연이 잉태한 것과 사람 손에 만들어진 것을 대비시켜 놓고 빛으로서 생각을 끌어낸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 놓여있는 생명에 대한 물음이다.

연장해서 보면 그의 평면 역시 쇠 파이프가 네온튜브를 대신하면서 본능적 감각과 문명화된 트릭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틈새를 느끼게 하는 작업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작업은 '지혜의 박스' .납활자를 붙인 사각 나무상자 속을 네온튜브들이 끊임없이 통과하는 작품이다.

지식이란 고정되지 않고 흐른다는 것. 그래서 앎이란 허공에 뜬 것처럼 신비한 그 무엇이란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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