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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부질문]경제분야…여야 "문민경제 실패" 한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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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민정부의 경제는 실패작이다. "

27일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쏟아진 말이다.

이런 인식엔 여야의 차이도 없었다.

의원들은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망쳤다고 비판했다.

제때제때 처방전을 내리지 못했고, 정책과 입장이 여러차례 갈팡질팡했다고 질책했다.

정부는 이런 공박을 불만스러워 했다.

"시장경제원리에 따랐다" 면서 경제위기의 책임을 온통 뒤집어쓰기는 싫다는듯 해명에 열을 올렸다.

정치공세성 발언도 꽤 나왔다.

야당은 신한국당을 겨냥했다.

신한국당의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총재 비자금 의혹 폭로와 실명제 위반을 연결지어 따졌다.

신한국당의 태도는 더욱 흥미로웠다.

이회창 (李會昌) 총재를 지지하는 주류측 의원들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흠을 잡는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누가 여 (與) 고 야 (野) 인지, 또 누가 정부측 인사인지 헷갈리는 국회였다.

금융실명제가 여야 의원들에게 난타당했다.

방향은 달랐지만 어쨌든 정치적 의도때문에 '동네 북' 이 됐다.

신한국당에선 이회창총재측 주류 의원들이 흠을 잡았다.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는 李총재와 보조를 같이 한 것이다.

국민회의.자민련측은 신한국당의 'DJ비자금' 의혹 폭로를 문제삼았다.

여권이 예금계좌를 뒤지고 있는데 실명제는 뭐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신한국당의 김용갑 (金容甲.밀양) 의원은 "실명제는 금융의 흐름만 차단해 국민경제의 숨통만 죄어놓았다" 며 "즉각 폐지되거나 실질적으로 보완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는 "총리는 문민정부에서 살아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국민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고 힐난하고 "고래로 실패한 개혁을 승계하는 예는 없으며 차별화는 새 국가 창업을 위한 필연논리" 라고 역설했다.

이상배 (李相培.신한국당.상주) 의원도 실명제를 최대 치적으로 여기는 金대통령을 겨냥, "감성적 인기에만 집착하면 대의와 내실을 놓치게 된다" 고 꼬집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신한국당, 특히 'DJ비자금 파일' 을 폭로하도록 했다는 李총재에게 화살을 돌리려는 목적에서 실명제를 꺼냈다.

김명규 (金明圭.국민회의.광양) 의원은 "신한국당의 비자금 조작 폭로로 金대통령이 자랑하는 실명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며 "실명제 위반자를 처벌하라" 고 요구했다.

김태식 (金台植.국민회의.완주) 의원도 "예금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우려가 확산돼 돈의 엑서더스 (탈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며 신한국당이 경제불안을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직원들은 외부 사정기관 지휘에 따라 무소불위의 금융사찰을 일삼고 있다" (金元吉.국민회의.서울 강북갑) , "야당에 단 한푼의 지정기탁금도 들어오지 않은 것은 여당이 야당의 자금거래에 대해 불법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 (金高盛.자민련.연기) 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고건 (高建) 총리는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금융사찰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계좌추적 시비에 대해선 "검찰이 대선후 수사에 착수할 경우 모든 것이 밝혀질 것" 이라고만 답변했다.

이상일 기자

작금의 한국경제 상황이 위기라는데 대해선 대정부 질문에 나선 여야의원이나 답변하는 총리와 부총리가 한결 같았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나 위기타개를 위한 처방에는 큰 편차를 보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은 대기업의 부도사태와 금융.외환시장의 불안은 정부의 무 (無) 대책과 정책혼선에서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자민련 김고성의원은 "시장원리를 앞세워 경제위기에 수수방관하던 정부가 막바지에 몰려서야 적극 개입에 나서는 바람에 정책의 실기 (失機) 로 인한 폐해는 물론 일관성마저 잃었다" 고 비판했다.

신한국당 이상배의원도 " (정부가) 어설픈 시장경제 원리를 고집하다 경제가 파국의 문턱까지 왔다" 고 성토했다.

李의원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금융.자본시장이 혼란에 빠지는데도 시장원리를 내세우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스스로 일어나라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 야유했다.

국민회의 김태식의원 역시 "시장이 실패했는데도 정부가 과도기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 이 경제위기를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정부측 답변은 일관성을 잃은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간의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고건총리는 "대기업 부도의 경우 당사자간의 자율적인 해결이라는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고 밝혔다.

강경식 (姜慶植) 경제부총리도 "시장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선택의 폭을 높이고 경쟁을 촉진하되 그 결과에 당사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시장원리의 요체" 라며 "어려울 때 일수록 시장원리를 더 지켜야 한다" 고 강조했다.

현 경제난국의 타개를 위한 처방에 대해 정부와 국회의 입장이 뒤바뀐듯한 모습이었다.

의원들은 정부가 진작 기아사태를 포함한 위기현장에 직접 개입했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을 늘리라는 의원들의 자발적인 지원 (?

)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측은 기존의 정책만으로도 앞으로의 경제상황은 나아질 것이라며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공허한 질문과 답변이 거듭되는 사이에 주가는 더 떨어지고 환율과 금리가 치솟는등 시장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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