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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국립오페라단이 시끄러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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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4층. 국립오페라단 사무실로 가는 복도에 대자보가 줄지어 붙어있다. ‘이소영 단장은 각성하라.’ 올 1월 해체를 통보받은 합창단원 40여명이 쓴 손글씨다.

공연장에서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국립오페라단이 지난 15일까지 엿새동안 공연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레이저를 쏴 구성한 무대미술, 어깨에 힘을 뺀 연출로 관객과 무대 사이의 문턱을 낮췄다는 박수를 받았다. 티켓은 연일 매진을 기록했고,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마케팅 또한 객석의 풍경을 바꿨다. 피가로와 수잔나에게 청바지를 입힌 ‘피가로의 결혼’도 좋은 평을 받았다.

하지만 ‘마술피리’가 공연됐던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밖에는 해고 통보를 받은 단원들이 피켓을 든 채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들은 “7년 동안 오페라의 합창단원으로 최저임금만 받으며 일하다 갑작스레 해체 통보를 받았다. 일방적 논리로 음악인들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호소했다. 이달 31일 합창단의 계약이 만료된다. 이에따라 오페라단과 합창단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예산 vs 우선순위=오페라 합창단 해체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효율성. 지난해 7월 취임한 국립오페라단 이소영(48) 단장은 “이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국립합창단이 있다. 오페라단은 이들과 함께 공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하 기관 규정이 없는데도 합창단에 연 3억원을 사업비에서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고된 합창단원들은 “오페라단 예산은 전년 대비 18.4% 인상된 50억1200만원이다. 예산을 집행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라고 반박한다. 외국의 유수 오페라단에서 자체 합창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예술적 완성도 대신 돈벌이를 택한 것”이라고 꼬집는 것이다.

◆해고 단원 어디로=2002년 만들어진 오페라 합창단 단원들은 “7년동안 상임화 약속을 믿고 최저임금 이하의 수당을 받으며 일했다. 단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단칼에 해고되는 것은 코미디”라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오페라단의 입장은 다르다. “법에 없는 임의 단체였기 때문에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 민간 단체에서 새로 만든 오페라단에서 이들을 정단원으로 써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단지 ‘국립’이라는 이름에 연연해서 반대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해고된 단원들은 이 제안을 “믿을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다음 공연은 4월 24일 열린다. 2011년까지 계획된 오페라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콘서트 형식의 무대를 만드는 것.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축제 분위기의 콘서트에 시위대가 또다시 피켓을 들고 나올지가 관심사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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