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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자유 뺏긴 갈릴레이 돈에 짓눌린 우리 인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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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편 갈릴레이 천체 관측 1년 전에는 영어권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존 밀턴(1608~1674)이 태어났다. 밀턴 탄생 400주년을 맞이한 지난 한 해 동안 영국과 미국에서는 각종 행사로 떠들썩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밀턴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영어 교육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하는 나라의 반응치곤 뜻밖이다. 영어를 오로지 먹고 사는 일에만 결부시키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의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이지만 국가 브랜드 순위는 33위에 머물러 있다. 인문정신 없이 국격(國格)이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밀턴이 갈릴레이를 만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밀턴은 1638년부터 1년3개월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1639년 3월 귀로에 피렌체에 들러 종교재판으로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 있던 갈릴레이를 만났다(그림·맨 왼쪽이 갈릴레이, 오른쪽 끝은 밀턴). 당시 밀턴은 31세, 갈릴레이는 75세였다.

밀턴은 서사시 ‘실낙원’에서 두 차례나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 표면을 관찰하는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밀턴이 갈릴레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불리는 ‘아레오파지티카’에서였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유를 빼앗긴 갈릴레이를 언급하면서 종교재판으로 인해 이탈리아의 학문이 굴욕적인 상태에 빠져 있음을 비통해했다.

대학들의 신학기 수강신청 과정에서 폐강된 강의 대부분이 인문학 강의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동아시아 문명사’ ‘문화의 철학적 이해’ 같은 것들이다. 취업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대학생들은 인문학보다는 취직에 당장 도움되는 과목만을 중점적으로 수강한다. 17세기의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의 억압으로 인해 자유를 상실했다면, 오늘의 인문학은 자본의 무게에 짓눌려 질식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현실 세계에 눈을 돌리는 젊은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상아탑에 안주하며 바깥세상과 소통할 줄 모르는 인문학 교수들이다. 젊은이들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상 인문학은 좀 더 친절하게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광장(아고라)을 누비고 다니며 시민들을 찾아다녔듯이.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