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영삼대통령과 결별 홀로서기 나선 이회창총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회창 신한국당총재는 벼랑끝에서 김영삼대통령과의 결별이라는 엄청난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22일 '3金정치 부패구조와의 성전 (聖戰)' 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 핵심 측근은 이를 두고 "이젠 김대통령과의 차별화 단계를 넘어섰다" 며 "DJ.JP와 함께 구 (舊) 정치부패구조에 놓여 있던 YS 역시 청산극복의 대상으로 선언한 것" 이라고 해석했다.

이총재측은 이 방법이 '외통수의 길' 이라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비자금 사건 폭로 당시만 해도 이총재측은 김대통령이 92년 대선자금에 대한 부담을 안아 자기를 희생해주기를 기대했다.

87년 전두환 전대통령이 노태우 후보에게 "나를 밟고 가라" 고 한 것같은 방식을 바랐던 것이다.

비자금 문제에 여권이 생명을 걸다시피 한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차별화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대통령이 검찰의 비자금 의혹 수사를 덮었다는 징후도 곳곳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총재측은 김대통령이 이총재를 지원하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총재는 지난 3개월간 여권의 단합을 위해 전통적인 여권의 방식을 택해왔다.

그러나 기아사태, 전.노씨 사면등을 청와대가 번번이 틀었고 이인제 전경기지사의 탈당도 끝내 막아주지 못해 갖은 수모를 당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3개월간의 노력이 득표에 플러스가 되기 보다는 마이너스만 가져왔고, 이회창 특유의 '대쪽' 이라는 정체성은 실종되어만 갔다.

이총재측은 전통적 여권 방식으로는 더이상 안되며 대세 (大勢) 역전을 위해선 '구정치와의 완전결별' 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혔고 검찰의 비자금 수사유보는 바로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이총재측은 향후 선대위 구성에서도 삐딱한 비주류를 배제한채 주류측을 전면에 포진시킬 계획이다.

당을 떠날 사람은 구태여 붙잡지 않겠다는 의중도 깔려있다.

구정치와 함께 비주류의 후보교체론에도 전면 대결을 선언한 것이다.

당내 대다수인 주류측이 그의 결단을 얼마나 따라 주느냐가 결국 과제로 남은 것이다.

이총재는 회견 직후 충남목천 독립기념관과 충북음성의 꽃동네로 발걸음을 돌렸다.

차안에서 그는 "정치개혁은 이제부터다" 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얼핏얼핏 비장한 각오를 엿보이게 했다.

오전11시50분쯤 신경식 비서실장만을 대동하고 독립기념관에 도착한 이총재는 바로 '추모의 자리' 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이총재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담담하다" 며 "앞으로 힘든 일이 많겠지만 잘해야지" 라고 말했다.

직후 음성 꽃동네를 찾은 이총재는 장애인.걸인등 2백여명 앞에서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고 난 뒤 무엇보다 여기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그는 "정치에 들어와 여러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내힘으로 이겨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며 "하느님이 나를 앞으로도 도구로 쓰시려면 계속 도와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고 소회를 밝혔다.

노인요양소를 찾은 이총재는 뇌막염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이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자작시를 해맑은 웃음으로 낭송해주자 무언가 설움에 북받친 듯 눈물을 글썽였다.

그의 결연한 심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던 것은 이날 아침 현정권 전직 장.차관 모임인 마포포럼 연설 (하얏트호텔) 이었다.

그는 "소설 '데미안' 에는 새가 껍질을 깨고 아프락삭스 신으로 날아가는 대목이 있다" 며 "당이 아마 과거에 겪지 못한 아픔을 겪게 될지 모르지만 어차피 홍역을 치러야 새정치로 갈 수 있다" 고 결단의 배경을 요약했다.

목천.음성 =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