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영희.미숙.정순.광수…' 너무 흔한 이름들이다.
30줄을 넘긴 한국인중 이런 이름의 친구 하나쯤 없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서 '흘러간' 이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다들 세련되고 깔끔하다.
아름.지민.다솜.은지 등등. 그런 면에서 PC통신 나우누리의 동호회 '영희랑 영수랑' 은 엉뚱한 모임이다.
짐작대로 회원들의 이름은 영희 아니면 영수다.
모두 79명. 대부분 이 이름을 가진 마지막 세대인 70년대 중후반생 대학생들이다.
막내인 초등학교 6학년생 이영희양이 있긴 하지만. 왜 영수와 영희일까. 이 동호회를 만든 대표 이영수 (24.회사원) 씨. 그는 심심하던 차에 자신과 같은 이름의 가입자를 검색해 봤다.
왜 그리 많은지. 김.박.최…돌아가며 영수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대략 3백명. 그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영수만의 모임' 을 만들자. 그게 '영수회담' 아닌가.”
통신망의 모든 영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모임을 만들자고. 그때 아이디어가 또 떠올랐다.
“영수만 있으면 외로우니 파트너 '영희' 와 함께 하자. ” 동호회는 이런 식으로 9월 중순 결성됐다.
그런데 이름이 같다는 점 하나만으로 저렇게 살갑게 지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씨의 말 - . “초등학교때 교과서에 자주 등장했던 이름이잖아요. 그래선지 은연중에 우리 스스로를 어린아이로 생각하고 있나봐요. 당연히 서로를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죠. ” 한 시인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고 했다.
사라지는 이름 뒤에 남는 여백에는 개구쟁이들의 낙서만 빽빽할 것 같다.
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