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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맞는 ‘경산묘목’ 명성은 끝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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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재배 농민이 묘목을 팔기 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경산묘목 제공]

경일대 앞 철로와 금호강을 건너면 경산시 하양읍 대조리에 거대한 들판이 펼쳐진다. 차 두대가 간신히 비켜갈 수 있는 도로 800여m가 끝나면 양 옆으로 묘목 밭 413만㎡(125만평)가 펼쳐진다. ‘경산묘목’으로 불리는 국내 최대의 묘목 생산지다.

요즘 이곳은 봄을 맞아 묘목을 사고 팔거나 접 붙이는 일로 분주하다. 지난 6일 사공휴(72·하양읍)씨 부부는 1년생 살구나무에 접을 붙이고 있었다. 2인1조로 접목사인 남편이 뿌리 내린 묘목에 칼질을 해 다른 묘목을 끼우면 결속사인 아내가 비닐로 감아 고정시켰다. 사공씨는 “하루 1000주 가량 접을 붙인다”며 “묘목 사업이 옛날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인이 처음 시작=경산묘목은 올해로 100년째를 맞는다. 단지 가운데 컨테이너 건물에 경산묘목조합이 있다. 임종길(60) 조합장은 “1909년 일본인 ‘상구’씨(1912년 고바야시 설도 있음)가 하양읍 금락3리에 국광 사과 묘목을 키운 것이 경산묘목의 시작”이라며 “60년대 주민들은 뽕나무로 양잠에 기여하고, 산림녹화 때는 빨리 자라는 오리나무 묘목을 대량 보급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금락3리는 지금도 ‘상구농원’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이 일대는 묘목 재배의 적지로 통한다. 묘목은 강수가 적어야 한다는 것. 비가 잦으면 뿌리가 썩기 때문이다. 경산은 강수는 적으면서 저수지가 300여 곳이나 돼 가물어도 물 걱정이 없는 곳이다. 거기다 땅은 사토질이다. 이런 조건 덕분에 전국 생산량의 70%까지 확대됐다. 사과·복숭아·대추·포도 등 과수를 중심으로 화훼·관상수·조경수 등이 연간 4000만주나 생산된다. 최근 들어 묘목 시장은 불안정해지고 있다. 수십년간 식목이 이어진 데다 묘목 공급은 줄어들지 않아서다. 거기다 옥천군 이원면과 경쟁을 벌이고 중국산도 수입되기 시작했다.

◆산·학·관 클러스터로 지혜 모아=농민들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05년 조합을 결성했다. 조합원만 430여 명에 한 해 1만명 이상이 매달리는 일터다. 연 매출은 600억원 가량. 묘목은 3년 농사로 불린다. 씨를 뿌려 1년을 키운 뒤 접을 붙여 다시 1년을 더 키워야 비로소 상품이 된다. 거기다 연작을 피해 옮겨다니는 농사이기도 하다. 경산시는 2007년 이곳을 경산종묘산업특구로 지정하고, 지난해는 대구가톨릭대가 참여하는 경산종묘클러스터사업단을 발족시켜 명성 지키기에 나섰다. 사업단은 지난달 ‘경산묘목’이란 브랜드를 선보이고 품질보증표를 달고 있다. 2011년까지 142억원을 투입해 우량 종묘를 육성하고 종묘기술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클러스터사업단장인 대구가톨릭대 최병진(51·영양토양학) 교수는 “당분간 저가 경쟁 등 문란한 유통질서 개선에 집중할 것”이라며 “바이러스 등 감염 묘목을 없애는 기술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임 조합장은 “도로에 경산묘목을 알리는 대형 아치를 세우고 북한에 경산묘목을 보급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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