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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대학, 그리고 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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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처럼 과학적 연구 중엔 근거가 빈약한 게 많다. 과학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의 절반가량은 다른 연구자들이 실험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과학적 연구결과는 무조건 진실로 받아들인다. 대학교수들의 연구는 믿어도 된다고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맹목적 믿음이 ‘과학 기술자’를 양산한다. 이들은 학문탐구에 일생을 바치는 진정한 과학자와는 사고방식부터 다르다. 이들에게 대학은 약육강식의 밀림이다.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교수를 지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대학 내 정치는 끔찍하다. 쥐꼬리만 한 이권을 놓고 서로 치고받는다”고 개탄했었다.

대학교수들은 학계에서 인정받고 명성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지식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유행하는 기술과 돈 되는 연구에만 몰려든다. 실험 데이터를 과장하거나 서로 상충되는 실험자료를 연구결과에 맞춰 조작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학문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이는 과학이 궁극적으론 잘못된 연구의 결함을 밝히고 이를 폐기하는 자기 수정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잘못된 가설은 무시무시한 증명의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게 마련이다.

자본주의가 그렇듯 과학 연구 시스템도 결코 완벽하진 않지만 현재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다만 대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 대학은 극심한 경쟁의 장이고, 성과를 인정받으려는 욕심에 설익은 자료로 연구논문을 만드는 사람이 많은 집단이라는 현실을 알려야 한다. 교수들은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으며, 직업적 편견들로 가득 차 있다. 산업과 대학을 가르는 손쉬운 이분법도 버려야 한다. 산업계만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는 식의 근시안적 편견이 대학을 순수한 집단으로 보는 오해를 부채질한다.

과학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이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과학적 연구를 무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올 1월 취임식 연설에서 “과학의 위상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바마는 최근 “과학의 힘을 활용해 정책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맹세하기도 했다. 그의 말은 부시와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닫겠다는 것이 아니라 학계가 폭넓게 필요성을 인정하는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평가된다. 과학의 진정한 부흥을 위해선 교수들의 연구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권장하고, 부풀려진 발표 내용보다는 데이터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

데이비드 쉐이위츠 전 하버드대 줄기세포연구소 연구원
정리=김민상 기자, [워싱턴 포스트=본사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