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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고(故) 장자연씨를 두 번 죽여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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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연예인의 자살이 줄을 잇고 있다. 안재환·최진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연예인의 자살은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이번 장자연씨 자살 사건에선 본질을 벗어나 리스트를 공개하라는 쪽으로 몰고 가려는 사람들이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해 어떤 인기영합적 이득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리스트에 거론된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창피를 주어 자신들의 발언권을 높여 보려는 얄팍한 의도에 불과하다.

장자연씨가 자살한 이유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폭행과 성 상납 요구에 따르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해당 기관의 조사를 통해 이를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다. ‘힘 없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을 벌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이 고인의 요구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흥미 위주로 사태를 몰아가거나, 다른 목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은 그녀가 원치 않는 일일 뿐만 아니라 고인을 두 번 죽이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장자연씨의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는 공범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각박하게 세상을 만든 우리 모두는 그녀의 죽음에 미안함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이용해 자신들의 목적을 채우려는 뜻을 가진다면 이는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다.

무엇보다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혁해야 한다. 아무런 게이트키핑이 없이 그저 연출자가 하는 대로, 프로덕션이 하자는 대로 드라마를 만들게 된 결과 저질 드라마와 엽기 드라마가 양산된 것이다. 방송국 내의 간부들은 이런 드라마가 만들어질 때까지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가.

필자가 재직할 때 보고 느꼈던 것이다. 밤새도록 룸살롱에서 술을 퍼마시다 미처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출근해 오전을 보내다가 점심 술로 해장한 뒤 사우나에서 낮잠을 자던 간부도 있었다. 그 사이, 신인 연기자도 왔다 갔을 것이다. 물론 지금 이런 간부는 없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방송사의 자체 정화 기능을 더욱 강화하려는 노력은 중단해선 안 된다. 얼마나 더 죽어 나가야 근본적으로 제도를 바꿀 것인가. 내부 고발자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금의 지상파 제도에도 문제가 많다. 방송 3사 시스템은 경제 규모가 지금보다 십분의 일도 안 되던 때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방송 출연 자체가 출세로 인식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연하려는 욕구가 강해졌고, 출연하지 못하는 연기자는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 알려진 가수나 연기자라도 출연할 무대가 부족해 사업에 매달리다 실패하는 사례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전통 가요가 최고의 대접을 받는 장르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고사 직전에 있다. 동물로 치면 한 개의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동물의 멸종은 보호하고 있는데, 예술 장르의 멸종 사실은 모르고 있다. 방송의 진입 통로가 근본적으로 막혀 있다 보니 벽 앞에서 깨져 죽어 나가는 예술 장르가 무수히 많다. 방송에서 이미 음악성은 사라진 지 오래고, 연기력도 죽어 나가니 인맥과 연줄이 동원되는 것이다. 대중예술가의 실력은 사라지고 인맥 만들기와 처세술만 판을 치고 있다.

만약 리스트에 거론된 사람 중 한 명이라도 그녀를 도와주었다면 한국 풍토상 그녀는 벌써 대스타가 돼 있었을 것이다. 이는 리스트에 거론된 자들과 그녀 죽음의 관련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지엽적인 증상에 매달리다 보면 전신의 병을 오진할 수 있다. 부정과 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감시의 불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유의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박문영 나라사랑문화연합대표·전 KBS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