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기업들 최악의 '부도 도미노'…실업·체임급증 지역경제도 파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부도 공포가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향토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있다.

어느 특정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국적인 도미노현상이다.

게다가 서울 중심의 경제구조에다 정치상황까지 혼미해 그 심각성마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측불허의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향토기업의 현재를 알아본다.

〈편집자〉

전주를 포함한 전북지역은 올들어 거성건설.기아특수강.전풍백화점 등 이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기업들이 줄줄이 부도사태에 빠져 토착기업의 씨가 말라버린 대표적인 케이스. 무엇보다 지난 16일 최종부도 처리된 ㈜쌍방울과 쌍방울개발의 여파는 가히 메가톤급이다.

연간 매출액 8백억~1천억원에 달하는 협력업체 2백여 곳의 연쇄부도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협력업체의 한 경영주는 "월 매출액 5천만원 이내의 영세업체가 대부분인데 어음할인이 불가능하고 일감도 없는 최악의 상황" 이라며 "이달 급여도 마련하지 못해 1만여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의 생활마저 위협받고 있다" 고 걱정했다.

이 지역에서는 건설부로부터 시공능력 전국1위 (95.96년) 평가를 받을 만큼 건실했던 거성건설이 지난 3월 파산한 것을 시작으로 부도 회오리가 유통부문으로 옮겨붙어 군산의 코스모스프라자, 전주의 서도프라자.전풍백화점 등 대형쇼핑센터들이 잇따라 부도를 냈다.

토착기업 씨 마를 판 광주 역시 고용.매출 측면에서 지역경제의 30%를 차지했던 아시아자동차의 부도유예 여파가 광범위한 영향을 주고 있다.

아시아자동차 협력업체 3백20개사중 78개사가 광주권역에 위치해 있고 이들중 10개사가 이미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나머지 회사들도 고사직전이거나 휴업상태. 이에 더해 향토기업의 터줏대감격인 화니백화점과 연매출액이 3백억원에 달했던 에디슨전자 등이 쓰러져 얼어붙은 지역경제의 실상을 짐작케 해준다.

대구와 부산지역의 경우는 주력업종의 도산이 두드러진다.

올들어 대구지역의 부도업체는 8월말 현재 9백20여개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대구 섬유업계의 선두주자로 꼽혔던 옥방화섬을 비롯해 명보섬유.금성염직이, 건설업체로는 삼산.남경건설 등이 부도를 냈고 태성.한서건설은 법정관리 상태. 부산은 주요 향토기업들이 거의 전멸한 것 외에 토착업종인 수산업까지 장기 침체에 빠져 원양수산회사 6백37곳중 30여곳이 문을 닫았고 여타 업체들도 출어를 포기 상태다.

대전지역에서는 건설업체들이 집중타를 맞았다.

대형업체로 꼽혔던 영진건설이 95년에 쓰러지면서 부도사태가 업계 전반으로 번져 올해 복음종합건설과 서우주택건영㈜이 넘어지는 도미노현상을 나타냈다.

이밖에 대표적 주류업체인 제일주조가 지난 4월말에 쓰러지는 등 올들어 지난 9월말까지 부도 처리된 회사만도 3백23개사로 집계됐다.

주력업종도 예외 없어 손꼽을 만한 대형 향토기업이 없는 대전.충남.충북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충북의 경우 20여개 중소 건설업체가 연쇄 부도사태로 무너진 것을 비롯해 도 전체 부도업체는 1백81개사. 지난해보다 35개사가 늘었다.

또 충남지역은 올들어 지난 9월말까지 모두 1백92개 기업이 부도를 냈다.

사태의 심각성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 어음부도율에서도 쉽게 짐작된다.

〈그림 참조〉 무리한 확장 禍 불러 한국은행 울산지점 지춘우 (池春雨.43) 조사과장은 지역기업들의 경영악화는 "전국적으로 내수와 수출부진이 겹쳐 자금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어음발행이 늘어나고 결국 제때 결제를 하지 못해 부도가 늘어 났기 때문" 이라고 요약했다.

그러나 향토기업을 살려야 할 지역금융계 역시 부실채권으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아 향토기업을 도울 여력이 없는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급변하는 경제 흐름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점과 무리한 사업확장등이 연쇄부도의 주요인. 쌍방울의 리조트 부문과 우성건설의 호텔업을 비롯해 화니백화점.에디슨전자 등이 사업다각화를 꾀하다 도산한 경우다.

또 대구.부산지역 섬유.건설업체 등의 연쇄부도는 몇년전 호경기 때의 경영거품이 빠지는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공단주변 전업 속출 향토기업의 연쇄부도로 대량 실업이 지역사회의 최대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고용불안은 다시 인력의 역외유출과 지역상권의 재편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주에서는 아시아자동차에 근무하던 근로자 2천명이 일자리 잃었다.

그 결과 광주 하남공단 및 아시아자동차 주변 공구상 8백여곳은 물론 식당.노래방.술집들까지 손님이 없어 전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부산지역의 경우는 9월말 현재 체불임금 규모가 1백71개 업체, 근로자 1만7천3백91명의 임금과 퇴직금을 합해 총1천2백12억6천9백여만원으로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배나 늘어났다.

또 건설업체의 부도현상이 특히 심한 대전과 충남지역에서는 서우주택건영㈜의 대전중구목동 한사랑아파트 (9백39가구) 건설이 중단되는 등 시내 곳곳에서 아파트 건설 중단 사태가 빚어졌다.

전국종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