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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풍경을 보려면 무조건 걸어라”

중앙일보

입력

“2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누구는 공부를 하고 누구는 돈을 번다. 올해 29세인 청년사진가 장은석씨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을 여행했다. 왜 하필 일본이었을까. 그것도 도쿄의 골목이라니. 골목길을 걷기 위해 일본까지 갔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뭐 특별한 것이라도 찾아다닌 것일까. 호기심에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니 난해한 느낌이다. 하지만 사진들은 최근 청년백수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장은석씨의 말을 빌리면 “당장 뚜렷한 직장도 없고 앞으로 결혼 계획도 막막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란다. 그의 사진과 여행기는 곧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일본 골목을 누비며 20대의 마지막 홍역을 치른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삼총사


Q 일본 출사 여행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원래 직업이 사진가인가
A
1995년 국내 그룹 듀스의 앨범을 산 것이 계기였다. 음악을 들으려고 샀던 앨범에 고(故) 조진만 작가의 사진이 있었는데 대단히 멋져보였다. 곧장 미놀타와 캐논의 35mm 필름 카메라를 구했다. 그러니까 중학생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진만 작가의 사진을 많이 흉내냈다. 그러다 장비 활용에 대한 상식이 생겼고 서울예술대학 사진학과로 진학했다. 졸업하면 멋진 작가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스물아홉의 나는 현재 사진찍는 백수다. 그런 이유로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

Q 일본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A
어느 날 동갑내기 친구 둘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1명은 일러스트고 또 1명은 가수다. 서울 생활은 각박하고 꿈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슬펐다. 2008년 늦은 봄 스물여덟의 우리는 서른이 되기 전에 인상적인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번잡한 곳보다 한적한 골목길을 유영하고 싶었다. 내가 마침 일본어를 할 줄 알아 여행지를 도쿄로 결정했다. 2008년 여름 우리는 도쿄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일러스트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가수 친구는 우리를 이끌고 희귀 음반을 파는 골목으로 인도했다. 앞으로 또 그런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다.

Q 주로 어떤 곳을 걸어다녔나
A
우린 음악을 좋아했다. 시부야나 이케부쿠로의 레코드점과 악기점을 쏘다녔다. 수입사진을 취급하는 서점도 찾아다녔다.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도 접해보고 싶었다. 재밌게도 일본의 골목들은 이런 희귀품을 파는 가게들을 많이 품고 있었다. 사진 관련 가게는 모두 찾아가 샘플북을 살펴보았다. 밀봉되지 않은 책들이 많아 행복했다. 무엇이 됐든 많이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골목을 걸으며 트렌드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선선한 날씨에는 시부야~오코테산도~하라주쿠~요요기공원까지 걸어 다녔다. 도쿄는 전철이 발달해 여행자들이 의외로 적게 걷는다. 전철로만 이동하면 구간 사이에 있는 도쿄의 풍경들을 모두 놓치게 된다.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면 무조건 걸어야 한다.

운동장의 물방울


Q. 도쿄 골목여행 노하우가 있다면
A.
도쿄 거리에는 벤치가 별로 없다. 도보여행을 하려면 우선 편한 신발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출사를 원한다면 반드시 트라이포드를 챙기기 바란다. 무거워서 부담된다면 모노포드(다리가 하나인 카메라 지지대)를 추천한다. 남다른 사진을 원한다면 필터나 릴리즈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다. 도쿄의 골목에서는 빠른 셔터보다는 느린 셔터로 얻을 수 있는 이미지가 더 많다. 바람에 날리는 골목의 빨래나, 작은 마을의 하천 등 햇살과 바람을 고려하면서 공을 들이면 자신만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Q 여행을 통해 20대의 고민을 해결했나
A
여름 한철 남의 나라 골목을 쏘다녔다고 해서 인생 자체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내 성향에 맞게 여행지를 잘 선택한 것 같다. 무심한 듯 흘러가는 골목길 하천, 주인을 기다리며 몸을 말리고 있는 난간의 빨래들, 문득 가난의 공포를 상기시켜주는 물풀들,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자양분이 됐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여행기가 인기를 끌었고 책까지 출간하게 됐다. 나의 첫 여행기 ‘도쿄산책’이 3월말 서점에 나올 예정이다. 3명의 청년들이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며 20대의 마지막 불안과 고독을 극복한 여행기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글/설은영 워크홀릭담당기자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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