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멀티숍 ‘10 꼬르소 꼬모(사진)’는 ‘느리게 쇼핑하기’라는 새로운 마케팅 철학을 내세워 눈길을 끈다. 매장에는 생활소품·서적·의류 등이 함께 있어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보려면 시간이 꽤 들 수밖에 없다. 손님들은 찬찬히 물건을 고르는 게 당연시되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여유롭게 즐긴다. 다리가 아파올 때쯤엔 매장 안에 있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실 수도 있다. 상업공간과 문화공간을 합친 이른바 ‘복합 매장’이다. 파리 콜레트(Colette), 도쿄의 레스터(Restir), 베를린의 더 코너(The Corner)도 슬로 쇼핑 장소로 이름이 났다. 구두·액세서리·화장품 같은 패션 아이템은 물론 음반·장난감까지 한자리에 갖춰 그 범위가 무한대나 다름없다.
국내에도 ‘슬로 쇼핑’을 즐길 만한 매장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강남에 자리 잡은 ‘데일리 프로젝트’ ‘잡’ ‘에디티드’ 등이 대표적이다. 디자이너 숍에 서점·행사장을 두거나, 양초·다이어리 같은 리빙 소품을 함께 선보이는 식이다. 최근 많은 카페에서 도자기·꽃·유기농 먹거리 등을 파는 것도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어 슬로 쇼핑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과장은 “슬로 쇼핑을 즐기려면 미리 살 물건을 정해 놓는다거나 ‘이건 지금 사야 해’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해선 안 된다”며 “쇼핑장소를 슬로 라이프를 체험하는 도시 공간으로 이해하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있는 가게
직접 재활용하고 싶지만 엄두가 안 날 때,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고 수입한 ‘옳은 물건’을 사고 싶을 때, 이 가게에 가보면 된다. 생각이 있는 ‘슬로 패션’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리블랭크(Re□)
기성복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 윤진선·채수경·홍선영씨가 함께 만든 재활용 패션 브랜드. 사람들에게 ‘남이 쓰던 것’이라는 거부감을 줄이고 ‘재활용 패션도 스타일리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지난해 문을 열었다. 옷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가져온 폐의류를 활용하고, 가방·지갑 같은 소품은 소파가죽·현수막 등으로 만든다. 상호명의 □는 공백을 의미한다.
모든 과정이 규격화되지 않은 탓에 디자이너의 창작 활동이나 다름없는 게 이 브랜드의 특징. 옷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그에 맞게 디자인하기 때문에 ‘신상’은 고작 하루에 5개 정도 나온다. 독창적이고 과감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들이 좋아할 물건이 많다. 온라인 쇼핑몰(www.6thave.co.kr)과 데일리 프로젝트·램·에이랜드 등 시내 매장에서 찾을 수 있다.
에코파티 메아리
그루(g: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