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어째서 폭로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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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정국을 보면 희한한 느낌이 든다.

집권 여당이 폭로 공세를 취하고 야당이 오히려 정책대결을 벌이자고 요구한다.

여야가 완전히 뒤바뀐 것같다.

더 희한한 것은 폭로한 쪽의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공격당한 쪽은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평생 정치만 한 야당후보가 강권을 휘두른 전직 대통령의 2천억~3천억원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천억원대에 가까운 비자금을 모았다면 의당 어떻게 그런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할텐데 그것을 문제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폭로한 여당 작전의 치사함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20억+α를 터뜨리면 김대중 (金大中) 씨의 거짓이 몽땅 드러날 것이라는 여당의 계산도 빗나갔다.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폭로 내용이 사실일 것이라고 답변하는 의견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당이 의혹의 초점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여론의 초점이 모이지 않는다.

오히려 폭로전 자체의 공정성과 도덕성이 더 문제되는 판이다.

그것은 균형 잃은 문제 제기의 방식,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공격이 너무 정략적이고 부당하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92년 대선을 전후해 야당후보가 돈을 모았다면 그때 수많은 각종 '장학생' 을 거느리고 선거자금을 물쓰듯한 YS는 어떤가.

지난 신한국당 경선때 박찬종 (朴燦鍾) 씨가 들고나온 대의원 매수문제는 완전히 해명되었나. 경선 전날 밤 사과상자들이 오갔다는데 그에 대한 의혹들은 모두 규명되었나. 여당후보의 주변엔 부패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사들이 섞여 있는데 그들의 뒤는 구리지 않은가.

야당에 대한 비자금 공격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자체정리가 이뤄진 뒤에야 쓸 수 있는 전략이다. 요즘 무슨 파일, 무슨 파일이라며 여당이 공격자료를 잔뜩 쌓아 놓고 잇따라 폭로한다는 소문들이 돌고 있다.

그런 파일들이 후보들의 비리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비리가 발생했을 당시에 문제돼야 했을텐데 이런 때에 꺼내놓는 것이 과연 공정하다고 보여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자료들은 정부 또는 유관기관의 협력 없이는 입수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또 하나의 '정보정치' 며 변형된 '공작정치' 라는 야당의 비난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자료가 일방적이고 정략적으로 정적 (政敵) 파괴용으로 사용된데 대해 해당 정부기관 뿐만 아니라 국정의 책임자가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미 수차례 지적한 바와 같이 이제 우리나라는 부패의 고비용 (高費用) 구조를 견뎌낼 여유가 없다.

군 출신 대통령 2명의 부패, 문민정부의 여전한 부패 방치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부패국가' 로 낙인 찍히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그런 구조를 '혁명' 해야 한다.

또다시 부패 의혹을 가진 사람을 청와대에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부패의 혐의에 대한 최소한 소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야당후보가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과연 보유하고 있는지는 규명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다.

여당후보도 마찬가지다.

이왕 폭로전을 시작했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이판사판식 전략이 아니라 진실로 정치혁명을 이루겠다는 의지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주변의 부패인사를 배제하고 경선 때의 자금살포 의혹을 해명하는 전제가 먼저 충족돼야만 하며,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까지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3金정치의 진정한 청산이며 또 YS와 차별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것을 해낼 수 없다면 정치혁명의 기치를 내리고 물러서야 한다.

제기된 모든 의혹을 모두 조사하자. 앞으로 대선이 공고되기 전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그것을 국회 국정조사에 맡기면 그것이야말로 정략으로 이용될 것이며 조사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채 좌초되고 말 것이 너무도 뻔하다.

그렇다고 편파수사 시비가 일지도 모르는 검찰에 맡기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이번이야말로 특별검사를 지명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대선후보들의 정치자금과 관련된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반부패의 정치물갈이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영배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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