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6.스탠더드텔레콤사 무선호출기 닉소(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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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7월 중국의 민간 최대 무선호출사업자인 차이나모션 광둥성 (廣東省) 잔장 (湛江) 시 대리점 앞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중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의 한국업체가 만든 무선호출기 (삐삐) 를 사기 위해 판매 첫날 새벽부터 대리점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던 것. 대리점측은 초기 규모로는 비교적 많다 싶은 1천개의 무선호출기를 갖다 놓았다.

그러나 2천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1천여명은 예약만 해놓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무선호출기를 수입 판매하는 차이나모션의 리츄밍 (李秋明.36) 영업부장은 "전세계 무선호출기 메이커들이 중국에 진출해 있지만 이런 장면은 처음" 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산 무선호출기 '닉소' 가 일으키고 있는 'Made in Korea바람' 이다.

닉소는 한국의 벤처기업인 스탠더드텔레콤 (대표 任寧植) 의 주력 제품. 중국의 무선호출기 시장은 그동안 미국의 모토로라가 장악해 왔으며, 최근 일본.한국등의 업체들이 추격을 벌이는 양상이다.

중국 베이징 (北京)에 스탠더드텔레콤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중간상 사이몬 정 (하이큐텔레콤의 세일즈엔지니어) 씨도 "닉소를 판매하겠다는 무선호출사업자가 많아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 이라며 싱글벙글했다.

선전 일대의 대리점에서 팔리는 닉소의 판매가격은 3백98원 (元) , 우리돈으로 4만원 꼴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쟁사 제품과 비슷한 가격이다.

같은 가격대에서도 인기가 높은 닉소에 대해 현지 관계자들은 "낙소의 강점은 가격보다 디자인" 이라고 말한다.

우선 크기가 모토로라 제품의 절반에 불과하다.

닉소 무선호출기의 크기는 가로 7.7㎝, 세로 5.1㎝에 불과하고 건전지 두 개를 넣었을 때의 무게가 겨우 68이다.

색상도 투박한 검정색에서 벗어나 산뜻한 느낌을 주는 노란색 제품을 내놓았다.

차이나모션측은 "닉소는 여성과 젊은층 고객이 특히 많으며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고 말한다.

베이징에서 만난 양징 (楊晶.21.회사원) 씨는 "닉소 무선호출기는 디자인도 예쁘지만 수신이 잘되고 고장이 나면 언제라도 당일 수리를 해주거나 교환해준다" 고 만족해 했다.

지난 93년이후 스탠더드텔레콤이 중국에 수출한 무선호출기는 약 1백만개. 올해 수출물량만 40만개, 약2천만달러어치에 달한다.

이 회사의 중국내 무선호출기 시장 점유율은 약5%, 시장의 80%정도를 차지하는 모토로라와는 아직 격차가 크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 군소 무선호출사업자만 4천여개사 (가입자는 약2천만) , 중국에 진출해 있는 세계 각국의 무선호출기 업체만 4백여개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시장 점유율은 괄목할만하다.

중국의 무선호출기 시장은 12억명의 인구와 최근의 경제성장을 감안할때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돼 업체마다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93년을 전후해 5~6개 무선호출기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진출했으나 대부분 시장확보에 실패했고 스탠더드텔레콤이 세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말을 전후해 판매가 크게 늘어 신바람이 난 상태다.

회사측은 "초창기 3년여동안 국내 수출대행사를 통하던 간접 수출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수출선 확보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고 말한다.

올해초 중국 최대의 국영 무선호출사업자인 차이나 유니콤 (中國聯通)에 월 2만~3만개씩, 지난 5월부터 차이나모션에 월 1만~2만개씩 공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또 월 1천~2천개씩 주문이 들어오는 20여개의 소형 업체도 수출선으로 확보했다.

이 회사의 강순용 (姜淳龍) 선전 (深수) 지사장은 "일본 무선호출기 메이커들도 중국 시장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는 가운데 이룬 성과" 라고 말한다.

스탠더드텔레콤은 이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 9월 선전에 지사를 설립했고 고속문자호출기 1종과 고속 숫자호출기 3종을 개발, 중국 시장에 선보였다.

고속무선호출기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제품에 비해 5~6배나 빠르게 숫자.문자를 전송할 수 있는 최첨단 제품. 베이징 서역 (西驛.기차역) 앞과 홍콩 접경지역등 20여곳에는 가로 15 세로 6 크기의 대형 입간판을 세우는등 현지 광고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에서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시장 점유율 4위에 올라 있다.

미국 진출 첫해인 지난해 1천2백만달러 어치를 수출했고 올해 2천5백만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현지법인인 스탠더드텔레콤아메리카의 김일환 (金一煥) 사장은 "미국 시장 개척은 시장의 85%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모토로라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소량 구매선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한게 주효했다" 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내 거래선은 2천2백여개사. 이회사 任사장은 "상품의 품질은 기본이고 중국 시장 개척에 필수적인 인맥과 전국적인 애프터서비스망을 구축하지 않았다면 닉소도 국내에서만 팔리는 상품에 지나지 않았을 것"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해외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아직 극복해야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중국 시장의 경우 홍콩 중간상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등 보다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며, 미국 시장도 대형 거래선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선전.베이징.LA=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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