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코리안시리즈 우승 LG트윈스 이광환감독,제주도에 야구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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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주공항에서 제주섬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10여㎞. 바다와 맞닿은 어촌 북제주군애월읍하귀리 가문동 해안을 찾아가면 여느 집들과 다른 단아한 풍경의 저택이 나타난다.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듯 집 한켠에 우뚝 솟은 해송 (海松) 들과 정원 복판에는 촘촘히 심어놓은 다이아몬드형 미니구장이 자리하고 있다.

'자율야구' 의 대명사로 알려지며 지난 94년 코리안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LG트윈스 이광환 (李廣煥.49) 감독. 그는 지금 이곳에서 산다.

지난해 7월 감독을 그만둔 뒤 아예 주민등록까지 이전해 살고 있으니 이제 제주도민이 된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경북 대구가 고향인 그에게 제주는 이제 '제2의 고향. ' 가족을 서울에 남겨두고 혼자 내려와 사는 그의 집도 단순한 집이 아니다.

마을안길로 접어들어 만나는 안내표지의 내용은 '야구의 집. ' 초등교 3년부터 야구배트를 손에 쥐었던 李감독의 40년 야구인생을 정리하는 야구박물관이다.

지하.지상 2개층 1백여평의 전시공간에 벽.바닥.천정.계단 할 것없이 진기한 야구의 역사적 기록들로 빼곡이 쌓여 더이상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 그가 미국 프로야구팀 '카디널스' 에서 코치로 일할 때 모았던 야구사의 진기한 기록사진, 각종 유니폼.기념품등 전시물품만해도 3천여점이다.

낚시를 퍽이나 좋아했던 그가 이곳에 인연을 맺은 건 82년. OB코치 생활중 무작정 낚싯대를 들고 제주공항에 내린뒤 택시기사에게 '목좋은 곳' 안내를 부탁해 찾은 데가 바로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가문동해안이다.

"밤새 낚싯대를 드리우다 보니 초가집 한두채만 있는 그곳 바다풍경에 흠뻑 젖어들더군요. 마침 주인이 땅을 내놓은 터여서 4백평을 샀죠. 훗날 이 땅에서 무언가 할일이 있겠다는 생각에…. " OB에서 LG감독으로 옮길 즈음인 92년 李감독은 제주가 고향인 고교친구와 손을 잡고 공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모은 야구관련 자료를 토대로 야구인의 '명예의 전당' 을 만들어보자는 것. 스포츠 불모지인 제주에 세운 국내 첫 스포츠박물관이었던 셈이다.

2년이 지나 95년 4월 문을 연 '야구의 집' 은 이제 제주에서 이름난 관광지다.

지난해만해도 신혼부부를 비롯, 3만명이 이곳을 다녀갈 정도. 내친김에 李감독은 지난해부터 서울에 올라가면 구단이나 KBO를 설득하기 바쁘다.

외국에서 수억원을 쓰느니 제주만큼 좋은 전지훈련장이 없기에 상설전지훈련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하도 제주자랑을 늘어놓다보니 어떤 사람은 제 고향이 제주인줄 알더군요. " 하지만 李감독은 요즘 우울하다.

공간은 비좁고 전시물품은 쌓여만 가니 아무래도 더 나은 곳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전들 이 귀중품들을 뭍으로 보내고 싶겠어요. 제주관광 발전을 위해 지역 행정기관의 도움이 있다면 좋을텐데…. " 가을밤이 짙어갈 무렵 제주토박이로 남고 싶은 李감독의 꺼낸 바람이다.

제주 =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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