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사하라를 가다]下.사막에 꽃핀 한국 仁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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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엔마크가 붙은 러시아제 안토노프 - 26 수송기. 기창 (機窓)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건 사하라의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그 위를 스쳐가는 기체의 검은 그림자 뿐이다.

사막 한가운데 길게 이어진 모래방벽이 모로코 점령지역을 벗어나 폴리사리오 땅에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준다.

30분쯤 지나자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며 맨 모래바닥에 착륙한다.

모리타니 접경지역에 위치한 아과니트 유엔군 팀사이트. 10여명의 블루 베레가 수송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1.5ℓ짜리 플라스틱 물병이 가득 든 상자들을 릴레이식으로 옮기며 각양각색의 블루 베레들이 내지르는 고함소리에 사막의 고요가 깨진다.

"우리끼리 '워터 파티' (물잔치) 라고 부릅니다.

1주일에 두번씩 있는 식수보급은 다들 가장 기다리는 행사지요. " 일행에 섞여 '물잔치' 를 벌이는 이근석 대위. 서울대의대에서 내과 전문의 자격을 딴 뒤 군의관으로 입대, 전방근무 1년만에 서부 사하라에 파견돼 왔다.

이미 6개월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가 됐다.

"정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아쉬운 생각도 없진 않지만 6개월이면 됐다고 봅니다. "

생소한 환경에서 낯선 이방인들과 어울려 공동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하기 힘든 좋은 경험이었다는 설명이다.

유엔의 요청으로 서부 사하라에 한국군 의료지원단 (KMU) 이 창설된 것은 지난 94년 9월. 그동안 6개월 단위로 6진까지 모두 2백8명의 한국군이 서부 사하라를 다녀갔다.

지난 3년간 KMU가 기록한 진료실적은 군요원 5천7백명, 민간요원 2천2백명, 현지 고용인 1천5백명등 연인원으로 따져 1만1천명에 이른다.

지난 6월 사막 한가운데서 교통사고를 당해 절명 위기에 처한 중국군 대령을 신속한 응급조치로 살려낸 것은 KMU가 사하라에 심은 한국 인술 (仁術) 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유엔주재 중국대표부에서까지 감사전문이 날아왔다.

지난 9월말로 7진과 교대한 6진의 경우 단원은 모두 20명.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각각 7명과 6명이고 지원반원이 6명이다.

KMU는 당초 42명으로 출발했으나 임무 장기화에 따른 유엔요원의 감축과 유엔의 경비축소 때문에 계속 줄어 5진부터는 20명으로 줄었고, 7진은 14명으로 더욱 축소됐다.

그러나 최근 모로코와 폴리사리오간에 합의된 주민투표가 실행단계에 들어설 경우 유엔요원의 증원에 맞춰 한국군 의료진도 다시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게 김승호 모로코 주재 한국대사의 전망이다.

아과니트 유엔군 팀사이트 (서부 사하라)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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