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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도 자유방임이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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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나 과학기술자 중 지금처럼 세계화된 인터넷 시대의 출현을 예견한 이가 과연 있나.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발전할 것을 내다본 이는 있었는가. 우리 사회의 인터넷 확산에 크게 기여한 것은 이른바 '누드 열풍'이라는 농담 같은 진담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 IT의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인터넷 다음으로 세계화된 것은 환경운동이다. '지구촌' '하나뿐인 지구' '지구를 살리자' 등의 구호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환경운동은 세계적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환경운동 못지않게 세계화된 것은 다름아닌 '반세계화' 운동이 아닐까. 6월 13~15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전 세계에서 서울로 모여 들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상황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비롯해 스포츠가 세계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우리 문화예술의 세계화를 위해 애쓰는 뜻있는 이도 많다. 다국적 기업은 현지화가 세계화의 첩경인데 비해 문화유산은 철저하게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화의 조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는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가는 길'이란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반세계화 운동을 벌이는 스웨덴의 저명한 생태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지난해 12월 초 우리나라를 찾아와 말했다. "진보의 진정한 의미는 경제성장이 아닌 행복에 있으며 행복은 자연과 접촉하는 공동체 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무슨 말일까. 부시맨처럼 발가벗고 어울려 살자는 걸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수준에서 맴돌더라도 '자연과 접촉'한다면 행복해질까. 정말이지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사람의 행복감이 향상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의 어느 사회에서 조사해 보아도 가난하기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다.

끼니를 걱정할 때는 배를 채우기만 해도 행복하다. 그러나 소득이 증가하면 '생활의 질'에 대한 기대수준 역시 높아진다. 따라서 행복도 수준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마련이다. 특히 IT 강국인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은 세계적으로 최고라 할 수 있다. 가난한 동네의 하천에 비해 부자 동네의 하천이 맑고 깨끗한 것은 바로 기대수준의 상향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국제적 강요'를 의미한다면 여기에 동조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든 국내적으로든, 그리고 경제이든 비경제이든 간에 발전과 성장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간섭주의가 아니라 자유방임주의라는 것을 역사가 분명히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VHS 비디오 테이프가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은 일본 정부가 국내 경쟁을 방치한 덕분이다. 우리 정부가 간섭했더라면 여성 골프계가 세계화될 수 있었을까. 국제적 간섭자가 없는 인터넷의 세계화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반세계화 운동은 지휘통제를 표방하나, 자유방임을 지향하나.

조영일 연세대 교수 화학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