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Culture] 시인 기형도 20주기 추모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동인 활동을 함께 했던 후배 조동범 시인이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진눈깨비’를 차분하게 읽어 나갔다. 멀쩡하던 봄 햇살이 순간 생기를 잃는 듯했다. 강풍이 온몸을 때리고 겨울이 ‘우우’ 다시 몰려왔다.

소설가 성석제씨(右)가 7일 경기도 안산 천주교공원묘지에서 열린 기형도 20주기 추모식에서 고인의 연보를 낭독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둘째부터 소설가 황경신씨, 김수영 문학과지성사 대표, 평론가 이광호씨. [문학과지성사 제공]


20대 청년에 죽어 청춘을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한 시인 기형도(1960∼89). 그의 20주기 추모식이 기일인 7일 오후, 그가 누워 있는 경기도 안성의 천주교공원묘지에서 열렸다. 성석제·조병준·김태연·김환·황경신·이성겸·고영범씨 등 기형도가 대학시절 몸담았던 연세문학회 출신 시인·소설가, 문학평론가 정규웅·이경철·이광호·정홍수씨,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의 김수영 대표, 전 국회의원 우상호씨, 기형도의 어머니 장옥순씨와 큰누나 기향도씨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문재 시인이 이끈 추모식은 단호했던 그의 시 속 어투만큼이나 간결했다. 소설가 성석제씨의 연보 낭독에 이어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대학시절’ 등이 낭송됐다. 이 시인이 낭송 행사를 마치며 “여기 올 때마다 날씨가 궂었는데 오늘은 좋다. 올해부터는 좀 가벼워지고 싶다”고 말했다. 하릴없이 살아남은 자들의 부채의식, 20주기 행사를 모양새 갖춰 치른 데 대한 안도감 등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성석제씨가 “이제 각자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예를 표하시면 됩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자 웃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술을 즐기지 않았던 고인이 좋아했다는 콜라가 한 잔 오도카니 제상에 놓여졌다.

20년이 흘렀건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아픔을 얘기했다. 조병준 시인은 “예전처럼 쿡쿡 찌르지는 않지만 아직도 욱신욱신 아프다”고 말했다. “죽는 날까지 이 아픔이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성석제씨는 “그와는 피를 나눴다. 젊음의 푸른 피, 문학의 붉은 피 말이다”라고 했다. 지난해를 빼고는 기일 참배를 개근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올 것”이라고 했다.

기형도와의 거리, 기억의 결에 따라 참배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이광호씨는 “그는 영원한 젊음으로 멈춰 선데 반해 비슷한 연배인 우리는 너무 늙어버렸다.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문재 시인은 “그의 시는 청춘의 비자다. 유년·가족·사랑 등 청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들어 있어 20대 독자들이 그의 시를 자기 얘기로 받아들이고 청춘의 열병을 견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힐 거란 얘기다. 정규웅씨는 “죽었어도 영원히 사는 법이 있다”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부분)

인생의 비밀을 일찌감치 눈치 채고 서둘러 떠나버린 기형도. 그가 산 사람들의 미망(迷妄)을 무덤 속에서 비웃는 듯했다.

버스는 참배객들을 해가 뉘엿뉘엿한 석양 무렵 서울 신촌에 부려 놓았다. 유가족과 몇몇 사람들은 뿔뿔히 제 갈 길을 갔다. 남은 이들은 20년 전 모습이 살아있는 막걸리집을 찾아들었다. 몇 순배 잔이 돌자 기형도가 살았던 1980년대 식으로 노래 부르기가 이어졌다. 그가 즐겨 불렀던 슈만의 곡 ‘2인의 척탄병’, 가곡 ‘명태’, 트윈폴리오·조용필의 노래가 불려졌다. 이미 흘러갔거나 흐르고 있는 청춘에, 허망한 청춘을 적시는 시 한 줄에 바쳐진 노래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하루를 기형도로 살았다.

안성=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