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가 새물결]국내 종금사 '조세피난처' 이용늘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해외의 조세피난처 (택스헤이븐 Tax Haven) 를 찾는 국내 종합금융회사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통상 외국의 조세피난처는 돈 많은 개인이나 기업이 세금을 피해 이익금을 빼돌리거나 마피아.국제 무기상등이 검은 돈을 세탁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내 종금사들의 경우는 조세피난처를 노크하는 목적이 사뭇 다르다.

외화차입이 어려워지면서 달러자금 마련을 위해 외화자산을 내다파는 과정에서 규제나 세금이 없는 택스헤이븐을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돈을 빼돌리기보다는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조세피난처를 활용하고 있는 셈. 방법은 이렇다.

종금사들은 우선 라부안 (말레이시아) 이나 케이먼 아일랜드, 바하마등 유명한 택스헤이븐에 자산매각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 (Special Purpose Company) 를 세운다.

그리고 이 회사와 외화자산 매매계약을 맺고 소유권을 넘겨준다.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으로는 외국기업이므로 자산의 소유권도 외국인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회사는 종금사로부터 넘겨받은 자산을 담보로 국제자금시장에서 변동금리부채권 (FRN) 이나 기업어음 (CP) 등 유가증권을 발행해 외국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이렇게 해서 조달된 돈이 최종적으로 자산매입대금조로 국내 종금사에게 들어오게 된다.

전문용어로는 자산담보부채권 (ABS) 방식이다.

종금사들이 처분하려는 자산은 대부분 외화리스자금을 사용해 해외에서 들여온 기업설비로 국내 대기업에 골고루 흩어져 있다.

종금사 한곳이 매각할 외화자산만 해도 보통 1백여개 기업에 분산돼있다.

이때문에 특정 자산을 따로 떼어내 직접 팔아치우기가 어려워 중간에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 증권화 과정을 거치는 것. 이런 방식으로 LG종금이 5억7천만달러, 새한종금이 5억달러의 외화자산매각 신고서를 재정경제원에 접수해 수리됐고 금호.고려.삼양종금과 한길.경남종금이 공동으로 5억~6억달러 규모의 자산매각절차를 추진중이다.

이가운데 새한종금은 네덜란드의 ING로부터 5억달러의 FRN을 전액 인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LG종금은 두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 미국의 체이스맨하탄과 채권인수계약을 맺기로 했다.

물론 자산매각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우선 매각할 자산에 대해 스탠더드&푸어즈 (S&P) 나 무디스등 국제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적어도 AA - 이상의 등급을 받아야 이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의 금리를 유리하게 적용받을 수 있다.

LG종금, 새한종금의 경우 금주부터 2~3주에 걸쳐 두 기관으로부터 평가작업을 받을 계획이다.

국내자산의 해외유출이라는 문제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매각대상가운데는 반도체설비.조선설비등 국내 중추산업의 설비시설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외국의 투자자들에게 팔아넘기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산을 자금화 (유동화) 하는 다른 대안이 없는한 택스헤이븐의 페이퍼컴퍼니를 사이에 끼워넣은 자산매각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일본의 은행들은 이미 80년대부터 이런 방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 국제부 관계자는 "단순히 세금을 줄인다는 장점도 있지만 국제금융거래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때문에 택스헤이븐을 이용하는 금융기관이 늘고 있다" 면서 "앞으로 조세피난처를 역외금융센터로 이용하는 국내 금융기관들이 늘어날 것" 으로 전망했다.

새한종금 박덕수 (朴德洙) 이사는 "자산을 줄이는 대신 새로 돈을 들여와 대출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ABS는 재무구조 개선효과가 크다" 며 "이점 때문에 외국에서는 이런 방식이 이미 보편화돼있다" 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