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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월드] 한국 파병지에 사는 쿠르드족은 어떤 민족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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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동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카르쿠크시 지역에 사는 한 쿠르드족 여인이 전통의상을 입고 부족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중앙포토]

"보낸다" "안 된다" 하면서 9개월 동안이나 끌어 왔던 이라크 파병 문제가 결국 "보낸다"로 결정난 것은 다 알고 있지요? 우리 자이툰 부대가 근무할 지역은 바로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아르빌이에요. 이 지역은 그동안 이라크 전쟁과는 무관한 지역으로 남아 왔어요. 그래서 치안도 안정된 편이고요.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어요. 쿠르드족과 다른 아랍인 사이의 반감이 만만치 않은 탓이지요.

이라크에서는 며칠 후 임시정부가 출범하고, 정식 정부는 약 1년반 후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하지만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이 앞으로 이라크 정국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아요. 그들 자신의 운명도 불투명하고요. 오늘은 쿠르드족의 역사와 앞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쿠르드족은 어떤 민족인가요=약 4000년 전부터 이라크.터키.이란.옛소련 남부에 걸쳐 살아온 아리아 계통의 민족이지요. 인구는 대략 2500만~3000만명으로, 나라 없는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큽니다. 종교는 이슬람교, 그중에서도 다수파인 수니파가 대부분이에요. 쿠르드족은 산악지대에서 반유목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힘세고 용맹하기로 유명하답니다.

쿠르드족의 첫 시련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랍민족에게 정복돼 처음으로 나라 없는 백성이 됐지요. 정복자의 강요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어요. 그래도 쿠르드족은 민족 정신만은 빼앗기지 않았어요. 여러 정복자들의 지배를 받았지만 한번도 모국어인 쿠르드어를 잊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2. 아랍인들이 쿠르드족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요=그래요. 아랍인들은 수천년간 쿠르드족을 지배해오면서 뿌리깊은 경멸과 증오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에요. 경멸은 '힘없는 민족'이기 때문에, 증오심은 '끊임없는 반항과 독립운동' 때문에 생긴 것이지요.

쿠르드족은 남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래 한번도 자치와 독립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잠시 자치와 독립을 얻기도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배신'으로 끝나고 말았어요. 쿠르드족이 본격적으로 분리독립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1932년 이라크가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한 이후입니다. 특히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란과의 전쟁을 벌이던 80년대에 쿠르드족은 자치권을 얻기 위해 이란 편에 섰어요. 이 때문에 후세인은 88년 화학무기를 동원해 쿠르드족 7000여명을 잔인하게 몰살시켰지요.

3. 그럼 주권이양 이후에도 문제가 되겠군요=맞아요. 이번 이라크 전쟁을 통해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아랍인들과 쿠르드족 간 감정이 더욱 나빠졌거든요. 쿠르드족은 걸프전쟁 이듬해인 92년 미국의 도움으로 자치권을 얻었어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지난해 이라크 전쟁에서도 미군을 공개적으로 도왔고요. 이들은 미군과 함께 북부전선에서 이라크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후세인 체포작전에도 참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투쟁했어요. 후세인을 지지하던 바트당 당원들이나 수니파들이 쿠르드족을 '아랍의 배신자'로 증오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요.

하지만 후세인 정권 제거에 앞장섰던 시아파들과도 좋지 않은 관계라는 게 더 큰 문제예요. 도후크.아르빌. 술라이마니 주(州) 등 기존의 쿠르드 거주지역 외에 니나와.알타으밈주를 자치지역으로 편입해 달라고 쿠르드족이 요구하고 나선 것이 시아파와의 관계가 틀어진 발단이에요. 유전이 밀집한 알타으밈주와 북부 교통중심지인 니나와주는 차기 정권을 노리고 있는 시아파들이 양보할 수 없는 노른자위 지역이거든요. 시아파들은 이때부터 쿠르드족을 거세게 비난하기 시작했어요.

불씨가 하나 더 남아 있어요. 미국이 임명한 과도통치위원회가 지난 3월 제정한 과도행정법(임시헌법)은 '3개주(州)가 반대하면 헌법 통과를 불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쿠르드족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헌법을 승인하지 않을 권리가 생긴 거죠. 시아파들은 이 조항을 미국이 쿠르드족에 부여한 특혜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요.

4. 유엔 등 국제사회가 중재하면 안될까요=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번달 통과된 이라크 관련 유엔 결의안도 이 문제를 다루지 못했어요. 이라크 시아파의 반발을 의식한 거죠. 이라크 내 치안회복이 우선이니까요.

쿠르드족은 유엔이 임시헌법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반발하다 미국과 유엔의 '구두약속'을 받고 일단 유엔 결의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러나 미국과 유엔도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은 갖고 있지 못해요. 누구도 쿠르드족 분리독립 문제를 선뜻 용인할 수가 없는 입장이거든요. 만일 이라크 내 쿠르드 독립국이 생기면 주변국 터키.시리아.이란 등에서도 심각한 민족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동맹국인 터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요. 결국 미국은 헌법 문제를 내년 헌법 제정 때로 미뤄놓았어요.

5. 자이툰 부대의 안전이 걱정이에요=현재로서는 안전한 편이에요. 페슈메르가 민병대 13만명이 치안을 잘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그러나 앞에서 얘기했듯이 주권이양 후 쿠르드족과 아랍인들이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이 한두개가 아니기 때문에 안심할 순 없는 형편이에요. 앞으로 정치상황에 따라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작지 않고요. 이미 쿠르드 지역에서는 여러 차례 대규모 테러사건이 일어났거든요.

비록 한국군이 재건지원사업을 목표로 하지만 국제테러세력과 이라크 내 저항세력들이 우리를 다국적군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에요. 이들로부터 공격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쿠르드족 역사>

▶7세기 아랍민족에게 정복, 이슬람화
▶13~15세기 몽골에 정복
▶17세기 오스만 튀르크와 이란 양국에 분할 편입
▶1880년 쿠르디스탄 지역 일부에 민족국가 설립
▶제1차 세계대전 직후 5개국에 다시 분할 편입
▶1920년 세브르 조약 쿠르드 자치권 보장
▶25~30년 터키 쿠르드족 봉기 실패
▶46년 무스타파 바르자니 쿠르드민주당(KDP) 설립
▶70년 KDP와 이라크 정권 평화조약, 일부 자치권 부여
▶88년 후세인 정권 '안팔 작전' 개시, 화학무기로 학살
▶92년 쿠르드족 이라크 북부 3개 주에 자치권 부여
▶2003년 쿠르드 이라크전 참전,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참여
▶2004년 6월 KDP 정치인 루슈슈와이스 이라크 임시정부 부통령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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