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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불량 만두'의 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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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쓰레기' 만두소 파동으로 한동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만두 속의 쓰레기가 아니었다. 만두소의 실체가 쓰레기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빚어진 이번 만두 파동은 우리 사회 병리구조의 산물이었다.

만두 파동은 식품관리 시스템의 허점, 경찰의 졸속 수사, 언론의 선정적 과잉보도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불량 만두와 무관한 제조업체들까지 단 며칠 만에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고, 급기야 30대 만두업체 사장이 한강에 몸을 던져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국내의 모든 만두가 불량 만두로 낙인찍혀 한국은 불량 식품 공화국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났고 그로 인한 충격과 피해는 국내외적으로 너무도 컸다.

이번 만두 파동은 우리 사회의 불량 시스템과 불량 의식의 산물이다. 경찰의 과잉 수사, 언론의 과잉 보도, 행정당국의 부실한 대응이 사회구조적인 '만두 죽이기'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만두 죽이기에 앞장섰던 주체들이 거꾸로 '만두 살리기' 캠페인을 전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편의 코미디다. 경찰이 만두를 사먹고 은행은 피해 만두업체에 자금 지원을 하며 언론은 또다시 이런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불량 만두'와 '양심 만두'를 구별해 선별 소비를 권장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만두 사태는 그 예측불허의 전개방향과 빠른 속도에 있어 매우 혼란스러웠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서 정확한 사실과 현상의 본질은 적당주의와 피상주의, 그리고 과잉감정주의로 가려지고 왜곡돼곤 했다. 경찰이 제공한 화면과 말에 따르면 자투리 무를 마대에 담아 폐기처리장에 방치한 것이 사실상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세척.가공해도 여전히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도 인체를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세균이 기준치 이상으로 나왔는지에 대한 당국의 설명은 없었다. 이 문제를 관장하는 식의약청장은 TV 토론에서 "불량 만두가 '일단'유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만두에 대해 세균검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적 근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과학자로서도, 행정가로서도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객관적 현주소이며 수준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만두소의 실체는 부인되고, 쓰레기 만두소의 허상만이 존재하게 됐다. 쓰레기처럼 방치했다고 해서 그 자체가 곧 쓰레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쓰레기'란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국민의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필요 이상의 불안감과 분노를 일으켰던 것이다. 만두소가 쓰레기인지 여부는 속단해 발표할 게 아니라 시간을 갖고 엄정하게 판단했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었다. 식의약청이 불량 만두소를 공급받아 사용했다고 발표했던 18개 제조업체 가운데 3개사는 불과 며칠 만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본 뒤였다. 세상에 이렇게 엉터리 식품안전 시스템이 있을 수 있을까.

불량 만두 파동의 진정한 원인 제공자는 만두 제조업체가 아니다. 불량 만두소를 만들어 만두 제조업체에 공급한 업체를 세번씩이나 적발하고도 과태료 600여만원을 내고 버젓이 몇 년씩이나 영업할 수 있도록 만든 불량 시스템이 문제다. 아울러 냉정한 눈으로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흥분부터 하는 사회분위기에도 책임이 있다. 국민과 기업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행정당국과 경찰.언론이 오히려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파동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잘못 운영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