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老교수 마지막 강연… 팔순 천문학자 유경로 서울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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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불치의 암 (癌) 도 노 (老) 학자의 연구열을 꺾지는 못했다.

'세종대왕 탄신 6백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가 열린 1일 오후 대덕연구단지내 롯데호텔 회의장. 국내 최고령의 천문학자이자 '고 (古) 천문학' 의 대가인 유경로 (兪景老) 옹 (80.서울대 명예교수) 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연단에 올랐다.

兪옹의 학술발표 주제는 '세종대왕의 칠정산내외편 편찬' . 그러나 참석자들은 그의 발표내용보다는 최근 암 판정을 받고도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학술발표에 나서는 그의 모습에 저으기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이날 학술회의에 참석한 천문학계 후배들은 핼쑥하게 여윈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과거 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천문대 박석재 (朴碩在.40) 박사는 "원칙에 철저한 학자중의 학자이셨다" 며 "건강이 회복돼 천문학계 대부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兪옹은 불편한 몸때문에 다른 발표자들과는 달리 40분내내 의자에 앉아 강연을 마쳐야했다.

그는 발표 도중 여러차례 기억이 잘 나지않는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목소리 만은 카랑카랑해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그의 후배들은 "투병중인 노학자 같지 않다" 며 "쉬운 일만 찾아하는 요즘의 일부 젊은 학자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라고 말했다.

兪옹은 말 한마디도 아껴야 할 만큼 힘든 모습이 역력했으나, 참석자들의 질문에는 있는 성의를 다해 답변하는등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발표전 인터뷰 요청에 "투병생활로 힘들다" 며 손을 내저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학술회의장에서 보여줬다.

兪옹은 "병은 병이고 연구는 연구" 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최근 삼국.고려.조선시대등의 우리 천문학 뿌리찾기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한학 실력은 한학자들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러나 이날 학술회의장은 그의 이번 학술발표가 그의 50년 천문학 외길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선지 유난히 숙연한 분위기였다.

발표를 마치고 연단을 떠나는 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대덕연구단지 = 김창엽 기자

◇ 약력 :

▶1917년 경기 화성출생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48년) ▶서울대 지구과학과 교수 (59~82년) ▶미 인디애나대 연구원 (61~64년) ▶한국천문학회장 (68~69, 74~76년) ▶서울대 명예교수 (8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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